요트 세일링 팀이 정해졌다. 출항 인원은 모두 여섯 명. 선장의 말대로 선실 식탁에 앉으면 딱 마침맞은 멤버이다. 우리의 캡틴이야 닉네임만 벙긋해도 엄지를 추켜올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뱃사나이다. 난생처음 돛배를 타는 나를 제외하고는 벌써 뱃머리에 자리 잡고 셀카를 찍으며 제대로 유랑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축과 세일을 살펴보고 풍향을 확인하거나 밧줄을 풀고 키잡이 역할을 자청하는 팀으로 나뉘어 저마다 분주하다.

이것이 바다 스포츠인지 항해인지 유람인지 애매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원정대는 한배를 타게 되었다. 오늘의 항로는 계류장에서 출발하여 광안리 앞바다를 한 바퀴 휘돌고 광안대교 너머로 떨어질 불덩이 같은 해넘이를 먼저 구경할 것이다. 그리고는 오륙도 인근 바다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로 뱃길은 짧지만 시간은 넉넉히 비웠다.

영화에서처럼 세일러복을 입은 항해사도 없고 멋진 비키니 미녀도 보이지 않으며 석유 부자들이 타는 호화 요트는 더더욱 아니지만, 매일 밟는 시멘트 바닥을 벗어나 물 위를 딛고 섰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러니 동지애나 전우애 같은 것이 왈칵 솟구쳐서 대마도까지라도 횡단할 것 같은 결기가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 짐작건대 잔잔한 밤바다 위에 배를 세우고 선상 요리로 준비한 소박한 저녁을 들며 커피잔을 부딪고 그저 맑은 얼굴로 한담을 나누는 시간이 최고의 풍경이 될 터이다. 더불어 올 한해 가장 호사로운 휴식으로도 각인될 것이므로.

선장이 뱃길을 낸다. 그가 바람의 길을 따른다. 요트의 용골이 선체를 받쳐주고 있듯이 수심을 짚고 균형을 잡고 바람의 각을 조절하는 그를 우리는 믿는다. 역풍이 오거나 맞바람을 마주하더라도 뱃머리를 꺾고 돛을 풀고 바람 자락을 감싸는 것도 선장의 몫이다. 그런 까닭에 옛날 뱃사람들은 배를 부리는 일이 곧 바람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겨 ‘풍(風)질’한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강렬한 태양을 온몸에 받은 남자, 손바닥에 수없이 물집이 생겼을 남자, 바다의 길을 통째로 외웠을 남자. 사공의 다른 이름을 암해자(暗海子)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바다에서 물고기 울음소리만 듣고도 복어치 우는 소리인지 조기 울음인지 가릴 줄 안다는 캡틴의 손길에 배가 파도를 헤치고 나아간다.

선상에 서니 바람이 쏟아진다. 약한 바람은 보듬고 센 바람은 흘려보낸다. 새들도 흐르고 물살도 흐른다. 흐르는 만큼 떠나온 거리를 생각하는 시간, 함께여도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시간. 모두 말이 없다. 요트는 그동안 내 삶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앞으로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내가 이 속에 들어 있다. 삶이든 사람이든 때로는 외면했던 일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는 법. 바다는 지금 어느 계절인가, 나의 시간은 어디쯤 지나왔을까. 밤바다가 모든 계절을 덮어버리듯이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 이곳에서는 무화시킬 수 있겠다.

어느새 엔진이 꺼졌다. 이제는 돛을 열고 간다. 말려 있던 흰 돛이 점점 부풀려져서 하늘을 덮는다. 돛자락이 바람을 받고 펄럭인다. 바람이 세도, 바람이 없어도 돛배는 나아가기 힘들다. 바다 어디에도 똑같은 파도가 없듯이 한 번도 같은 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 진정한 뱃사람은 바람이 오고 돌고 터지고 끊기는 것을 눈치채야 하며, 바람을 물고 듣고 달래고 바람에 기댈 줄 알아야 한다. 바람과 싸우면 지는 것이다. 바람과 정면으로 마주치면 돛은 떨게 되고 배는 그만 정지하고 만다. 그것이 돛배의 원리다.

배가 한쪽으로 누워서 간다. 아마도 옆바람을 받았으리라. 갑판 너머로 훅 들어오는 소금기 머금은 해풍을 날숨으로 내뱉는다. 오로지 지나는 바람만 있을 뿐 머무는 바람은 없다는 것도 안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바다나 육지나 매한가지다. 바람을 읽는 자가 요트를 움직이듯이 마음을 읽는 자는 사람을 움직인다. 생의 강풍 앞에서도 바람길을 잘 보는 자만이 순항을 할 수 있듯이. 우리의 선장이 반곡점에서 뱃머리를 튼다. 그가 또 다음 세일링에 초대장을 내민다. 풍랑을 견디며 함께 갈 바다의 동지를 구하는데, 나는 멀미로 탈락 일 순위에 들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만은 아임 세일링, 바람을 따라 흘러간다.

문학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