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한국 드라마가 있다. ‘오징어 게임’이다. 충격과 공포에 더하여 재미도 있는데 인간의 본성과 사회에 대해 성찰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상대를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비극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가장 악한 측면을 끌어내서 보여주었다는 점이 흥행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오직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보여준 점이 공감을 이끌어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보는 이의 처지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서 흥미롭다. 이 드라마는 현실사회의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목숨을 건 잔인한 생존 게임에 스스로 참가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는 다만 문제만 제기할 뿐 외면해버린다.

이 드라마는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딱지치기를 해서 이기면 돈을 받고 지면 뺨을 맞는다는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돈을 위해서 뺨을 맞을 준비가 된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돈 때문에 자존심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드라마는 폭로한다. 맹자(孟子)는 “만약 사람이 원하는 것에서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가 무릇 살기 위해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 사람이 싫어하는 것에서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가 환난을 피하기 위해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 그렇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쓰지 않는 방법이 있으며, 환난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다”고 했다. 죽어도 하지 않는 또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게 하는 게임의 규칙을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라고 한 사람이 절규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냉정하게 현실 인식을 공유하는 참가자들은 결의를 다지며 필사의 게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옥이란 어떤 곳이기에 인간으로서는 결코 넘어서는 안 될 그 선을 넘으면서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것일까? 단테(Dante)의 ‘신곡’ 지옥문에는 이렇게 섬뜩한 말이 적혀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라!”

지금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역설하면 그들이 믿고 따라오겠는가? 지금의 현실을 지옥으로 규정하는 드라마가 흥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론 자신이 처한 현실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드라마는 사회적 메시지와 오락성을 겸비할 때 성공한다. 이 드라마가 고발하는 현실은 해결책이 없는 지독한 절망인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어떠한 잔인하고 치사한 일도 주저 없이 감행하는 고독한 야수와 같은 존재로 현대인을 묘사했는데, 그것이 적중한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명이 막대한 돈을 다 갖는 게임을 치르면서 하나둘 목숨을 잃는다. 그러면서 극한의 상황에 처해서는 사랑과 우정과 신뢰란 원래 없는 것임을 확인시키는 냉혹한 장면이 반복된다.

충격과 공포로 가득한 이 드라마의 대본이 처음 나왔던 10년 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현실에 어울리는 소재가 되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빈민 증가, 극복할 수 없는 빈부차이, 그리고 요행으로 성공하려는 야심을 부추기면서 절제와 양보, 의리와 같은 전통적 가치에 대해서는 냉소하는 사회 분위기, 이런 것이 이 시대의 고민인 것이다.

이 드라마는 직설적이고 강력하게 사회 문제를 고발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심각한 측면보다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게임을 따라 해보는 재미에 더 열광하고 있다. 각종 행사와 방송에는 예외 없이 그런 게임과 의상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제기한 문제는 무시할 정도로 사회적 감수성의 센서가 망가진 것일까?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측은지심은 어디로 갔는가? 모두가 자기 살기 바쁜 세상에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리바이어던’에서 묘사했던바, 모두가 모두를 적으로 상대하는 끝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자연상태가 현실로 도래할 것이다. 그런 세상을 홉스는 “외롭고 더럽고 야만적이고 삶은 짧다”고 했다.

이제 경쟁 대열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여 절망하지 않도록, 그리고 중요하게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실질적으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 주거 식량 의료에 있어서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정도를 넘어서, ‘인간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수준 이상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한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