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이라는 말로 인사말을 시작하는 달, 12월이 왔다. 2021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부산 문화·예술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2021년 부산 문화계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다니고 겪은 현장으로 대상을 좁혀 골라본다면, 별 망설임 없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10월 6~15일)를 택하겠다.
올해 BIFF가 보여준 결단·도전·성과는 그 자체로도 매우 인상 깊고 선명했다. 그 과정에서 BIFF는 부산 예술·문화계에 그 시점에 꼭 필요했던 방향 전환을 앞장서서 해냈다. 엄혹한 코로나 시국에 이런 일에 도전해 성과를 낸 점은 뜻깊다. 파급효과도 기대하게 한다.
그렇다면 제26회 BIFF는 어떤 일에 도전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나?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문화계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의 막을 올렸다. 둘째 초대형 국제 문화행사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셋째 시민 가까이, 부산 구석구석으로 가는 프로그램인 커뮤니티 비프(동네방네 비프 포함)을 과감하게 확대해 시민 참여도를 높였다.
올해 BIFF는 ‘오프라인 행사’를 대폭 회복하고 출품작 100%를 극장 상영했다. 지난해 제25회 BIFF가 코로나 직격탄을 그대로 맞으면서 수세와 방어에 집중해 온라인 행사로 전환한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이 자체가 아주 과감한 결정이었다.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고 기획하던 단계에서는 2021년 10월의 한국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될지 거의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방어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것도 명백했다. 언젠가는 풀 것은 풀어서 코로나와 함께 가는 ‘위드 코로나’의 막을 올려야 했다.
결국, 누가 그 일을 먼저 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였다. 철저하게 준비·대비할 역량과 책임을 감당할 시스템과 용기가 필요했다. 또 일정한 수준 이상의 규모·네트워크·권위가 있어야 파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터였다. BIFF는 그 일을 맡았다. 부산 문화예술계 흐름을 되짚어보면, 아쉽게도 이렇게 과감하게 결정하고 앞장서서 나가는 시도는 부족했다.
작은 단체 또는 개인이 대담한 실험에 나서기는 했으나 이런 경우는 영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큰 단체나 기관은 책임이 따르는 과감한 시도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까지 상당한 기간에 걸쳐 부산 문화·예술계의 활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는 진단을 받는 데 이런 풍조가 한몫했다고 나는 판단한다. 한 도시의 문화 활력을 높이려면, 과감한 시도와 실험을 장려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BIFF가 앞장서서 바람 맞아가며 위드 코로나 행사를 시도한 것은 부산 문화판의 흐름을 전환하는 상징적 의미 또한 선명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결합한 점은 BIFF의 저변과 영향력을 크게 넓힐 수 있게 해주고, 관련 기술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이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시도할 영역이다. 예를 들어 이번 영화제 개막식을 담은 BIFF의 공식 유튜브 영상은 현재까지 21만 조회를 기록했고, 봉준호 감독과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나눈 스페셜 대담 영상은 3만3000 조회에 도달했다. 세계 곳곳에서 접속해서 이 영상을 보고 있다. 온라인을 오프라인 행사와 결합하지 않았다면, 아주 제한된 관객만 행사를 관람했을 것이다.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관객과 소비자가 영상을 수용하는 플랫폼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영화제의 위상에도 급격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말을 취재 현장에서 종종 듣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결합 전략뿐 아니라, 올해 BIFF가 과감하게 확장한 커뮤니티 비프와 동네방네 비프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커뮤니티 비프는 BIFF 발상지인 중구 남포동을 중심으로 관객과 시민이 참여해서 완성하는 신나는 영화제다. 동네방네 비프는 지자체 등과 협업해 부산 14개 구·군의 명소에 대형 스크린을 걸고 영화를 트는 프로그램이다. 이 행사는 관객을 주체로 내세우는 장점이 있고 부산 시민이 BIFF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높인다. ‘지금쯤 부산에 가면 영화제를 하는구나’ 하고 누구라도 느끼게 해주는 엄청난 홍보효과가 있음도 중요하다. 사실 이렇게 판을 펼치는 일은 부산 시민의 오래된 숙원이다. 더 큰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예술·문화 영역은 크고 작은 성공사례를 쌓는 데서 발전이 시작된다. 크고 작은 성공사례를 쌓으면서 경험이 무르익고 창의성이 샘솟는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과감하게 앞서서 실험하는 선례가 있을 때 큰 도움이 되고 참고가 된다. 이것이 ‘제26회 BIFF의 도전’을 2021년 부산 문화계 최대 뉴스로 꼽은 이유이다.
기획에디터 겸 기획탐사부장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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