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크게 ‘보수경제학’과 ‘진보경제학’으로 나뉜다. 선거 때가 되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은 둘 중 하나를 활용해 경제정책을 수립한다. 두 경제학파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거의 150년 이상을 다투는 중이다. 싸우는 것 중 하나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장과 분배에 관한 주제인데, 이 배후에는 사실 각자의 도덕적 신념이 진을 치고 있다. 바로 ‘자유와 평등’에 관한 문제다.

보수경제학은 자유를 최우선적인 도덕적 가치로 꼽는다. 자유로 인해 경제활동이 개인의 판단에 맡겨짐은 물론이고 무한한 축적의 욕망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가 초래한 불평등은 정의롭다! 하지만 진보경제학은 모든 사회성원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행복하다는 신념을 가슴에 품고 있다. 반면 자유는 시장에서 강자의 이념적 무기일 뿐이다.

왜 그런가? 부와 권력을 이미 갖춘 강자는 자유를 활용해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축적할 수 있지만, 애초에 그럴 수단을 갖지 못한 약자는 주어진 자유마저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유롭게 방임된 시장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공동체의 대다수 동료 시민은 박탈과 굴욕으로 탄식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것이 야기한 불평등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강자에게 적절한 세금을 부과해, 그 돈으로 약자에게 재분배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문제가 된다. 보수경제학은 부자의 부는 타고난 재능과 개인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과세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보경제학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먼저, 재능은 노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 재능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선물은 독차지하기보다 동료 시민과 함께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력도 따져 봐야 한다.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한 나라에는 학교 도서관 연구소 등 사회구조와 관계망 안에 거대한 ‘사회지식’이 축적되어 있다. 그 지식에 ‘접속’하지 못하면 개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더구나 이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편리한 교통수단과 무상교육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사회지식과 제도적 장치 이 모든 것은 선조들과 사회구성원들이 오랜 세월 피와 눈물로 일궈 놓은 결과다.

이를 공짜로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재능은 빛을 발할 수 있었고, 우리가 기울인 노력도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실제로 대다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받은 경제적 보상 가운데 개인적 노력의 몫은 대략 10%로 추정한다. 내 자신의 노력을 아무리 부풀려본들 우리가 얻은 소득 중 “5분의 1 정도만이 ‘개인의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라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0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의 고백이다.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만일 아프리카대륙의 에티오피아에 태어났더라면 카라반에서 낙타를 몰고 있을지 모른다. 에티오피아에는 미국의 선조들이 오랜 세월 사회구조와 관계망 안에 축적해 놓은 거대한 ‘사회지식’과 유리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사회’의 덕을 입고 있으며, 동료 시민에 대해 ‘빚진 자’들이다. 세금은 정의롭고 평등은 가치 있는 도덕적 덕목이다.

최근까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전국민지원재난금과 기본소득을 주장한 적이 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지금까지 부자들도 세금 많이 납부했으니 이제 혜택을 입을 때도 됐으며, 그래야 평등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뒤에는 부자들이 지금까지 개인이 기울인 정당한 몫을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탈취당해왔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진보경제학자들에게 매우 낯설며 엉뚱하기까지 하다. 그건 오히려 보수경제학자들에게 어울리는 생각이며, 요즘엔 그들마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통해 불평등이 완화되는 것도 아니다. 진보정당의 후보라고 하지만 이재명의 ‘진보’ 경제학은 족보가 없다. 늦게라도 철회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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