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차 백신을 맞고 몸살 기운에 다음날 꼬박 하루를 내리 잠만 잤다. 몸이 힘든데 기분이 좋았다. 백신을 맞기 전에는 다른 것보다 오래 아파서 일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아프니까 정당하게 아무 생각 못(안) 하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하루 이틀을 죄책감 없이 잠으로 보내고 난 뒤, 나는 과연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의문이 들었다. 주말마다 알 수 없는 환상통에 시달리다가도 월요일 아침에는 기적처럼 일어나서 몰아치는 업무를 대면하러 가는, 아플 수도, 아파서도 안 되는 일상을 버티는 현대인으로 우리는 언제까지 연명해야 하는가.

지난여름, 삼십 평생 거의 처음으로 식단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운 좋게도 좋은 필라테스 선생님을 만나서 무리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가꾸는 경험을 하게 됐다. 탄수화물만 왕창 먹고 있던 삼시 세끼에 단백질을 더 추가하고 스트레스로 무조건 폭식하던 습관을 고쳐보면서, 더 균형 있고 영양가 있는 습관을 점진적으로 만드는 중이다.

초심자답게 근육과 지방에 관해 여러 가지 정보를 탐닉하고 있는데, 재미있었던 것이 근육은 운동할 때가 아니라 운동 후 휴식할 때 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매일 같이하던 운동을, 지금은 일주일 중 언제 운동을 쉬어야 할지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나씩 하나씩 내 몸과 실험하며 새로운 루틴을 잡아보는 중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다가, 문득 일도 근육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의 사회적 경험이 근육으로 내재화되지 못하고 찢겨서 너덜거리는 것은 적절히 휴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는 이 기현상은, 사회적 근육이 성장(휴식)할 틈 없이 훈련하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회사를 만들고 최근 2년 정도는 나를 거의 돌보지 않았었다. 바쁘기 때문에 운동도 그만두고 스트레스 때문에 아예 안 먹거나 아주 많이 먹거나 하면서 심신의 비참함을 즐겼달까. 그땐 몰랐는데 요즘 운동을 하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그게 죽고 싶은 것이었나 싶다. 농담인 척 (그러나 간절한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회사를 그만두는 게 꿈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어쩌면 이대로 죽어야만 다 그만둘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자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한 자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기력을 되찾으면서 나는 이제야 정말로 그만둘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운동을 시작하고 근육량을 1kg 정도 늘렸는데, 저질체력이 늘어난 기쁨도 있지만 가장 감사한 변화는 수면이다.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금세 잠에 빠진다. (불면으로 고생한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잠드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루에 할당된 육체적인 에너지를 거의 소진하기도 했고, 하루를 그만두는 힘-잠을 시작하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필라테스 선생님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려오는 것도 중요해요.’ 누워서 두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도 굉장한 힘을 필요로 하지만, 시작한 동작을 끝내는 것, 다시 말해 다시 지면으로 다리를 천천히 내려놓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쩌면 모든 일이 ‘시작이 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시작한 것을 그만두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전에 여러 단체의 대표님들을 보며 고된 활동을 지속하는 힘이 뭘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게 ‘대의’나 ‘신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두는 힘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도 해본다.

잘난 듯 말해봐도 나는 여전한 번아웃증후군 현대인이다. 일에 치이다 못해 질질 끌려 살고, 나의 온 일상은 회사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한참 동안은 이런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경솔하게 말해보건대, 이제 죽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만둘 것이기 때문이다! 씨네소파도 그런 의미의 건강함을 가진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작하고, 또 건강하게 끝낼 수 있는 힘. 유려하게 두 다리를 지면에 내릴 수 있도록, 아름답게 그만둘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출발선의 관성에 우리를 내맡긴 채 방치하는 것을 그만두자.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