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항상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던 다리 밑이 바짝 말랐다. 시멘트 작업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날씨 좋다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간 나중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정작 일하려고 날을 잡으면 때 맞춰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야 한다. 냉정한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범초산장으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콘크리트 관 5개를 붙여 만든 다리다. 산장이 계곡과 저수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경치는 좋지만 홍수 때문에 두 번이나 큰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

한 번은 하루에 350㎜나 되는 장대비가 쏟아져 콘크리트 관이 밑으로 떠밀려갔다. 다행히도 부서지지는 않아서 포크레인을 불러 다시 제자리에 앉히고 모래와 흙으로 덮어놓았다.

그 정도로 다 해결된 줄 알았지만 불행은 쉽사리 단념하지 않고 어디엔가 숨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몇 년 뒤에 또 큰비가 오자 콘크리트 관이 떠내려 가지는 않았지만 위에 덮어놓은 흙과 모래가 홀랑 쓸려가서 대머리 다리가 되고 말았다.

두 번이나 피해를 당한 뒤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일하게 대처했다간 큰일 날 것 같았다.

젊었을 때 많이 아파본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 나 또한 크게 아파 보았기 때문에 술을 절제하고 매주 한 번은 산에 간다. 산장에 가서 일하는 것도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한 노력이다.

다리가 떠내려간 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불행으로 끝나거나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시멘트를 사다가 모래와 자갈을 섞어 다리 위를 겹겹으로 발랐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이런 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어떻게든 해냈다.

화장에 서툰 소녀가 덕지덕지 분칠하듯 시멘트를 되는 대로 발랐다. 미장이가 보면 배를 잡고 웃을 솜씨지만 서툴러도 꼼꼼하게 덧칠했다.

그 뒤로 태풍이 몇 번이나 지나가고 엄청난 폭우가 다리를 때리고 지나갔지만 위로 넘어간 적은 있어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 대신 해마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미리 손을 보아야만 했다. 아무리 튼튼하게 손보아 놓았어도 세월의 더께 앞에서는 자신만만할 수 없었다. 어느 틈에 금이 가고 구멍이 뚫리기 때문에 찬찬히 살펴보고 때워 놓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손 놓고 있으면 언제 어떤 화를 당할는지 모른다.

연례행사처럼 다리를 보수하노라면 공연히 계곡 옆에 자리를 잡아 이 고생을 하는구나 싶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리 덕분에 시멘트와 모래를 나르면서 운동할 수 있으니 이것도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등산할 때 배낭을 메면 무겁지만 뒤로 넘어졌을 때 머리를 보호해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내 다리도 건강을 지켜주는 안전장치가 아닐까?

계곡에는 별처럼 많은 돌과 모래가 널려 있다. 그렇게 많아도 정작 내가 주워서 쓰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처럼 시멘트를 섞어 비비고 발라야만 튼튼한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된다.

우리 건강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래 튼튼한 사람이라도 세월의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는데 별다른 노력을 안 한다면 근육이 점점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나무는 뿌리가 먼저 늙고 사람은 다리가 먼저 늙는다고 한다.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세월의 폭우에 쓸려가 버릴 수 있다. 다리를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두 발을 벌려 걷는 행동이 펌프질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루에 만 보 정도는 걸어줘야 피가 뭉치지 않고 온몸을 골고루 순환한다. 건강은 돈이나 의사가 지켜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리 보수한다고 깜냥에는 몸을 많이 움직였지만 만보계를 보니 8500보밖에 안 되었다. 나머지는 저녁에 음악을 틀어놓고 막춤이라도 추어서 채워야 할까 보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