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고인은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북방 외교 및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공과 함께 ‘5·18’ 사죄 없이 떠나는 쿠데타 조력자라는 과가 남았다. 특히 고인은 1987년 6월 민정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민심의 요구를 수용해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온 그의 사망으로 ‘1노(盧)3김(金)’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에 따라 민주화 시대 이후의 우리나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우리 사회가 안게 됐다.

향년 89세인 고인은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오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1시 40분께 삶을 마감했다. 고인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해왔다. 지병으로 희귀병인 소뇌 위축증과 천식까지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4월 SNS 글을 통해 “대뇌에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다”며 “이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고인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維新) 선포 이후 15년 만의 첫 직선 대통령인 고인은 우연의 일치로 박 전 대통령의 42주기가 되는 날 세상을 떠나게 됐다. 국가장,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인은 대내적으로는 국민통합, 대외적으론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기치로 내걸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는 등 한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1997년 12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고, 오랫동안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지난 2013년 9월 이를 완납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대해 스스로 참회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고인의 아들 재헌 씨가 두 차례 광주를 찾았으나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 셈이다.

고인은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이와 함께 5·18 유혈 진압 책임론은 그가 풀지 못한 숙제가 됐다. 이에 따라 아직도 5·18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죄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전 전 대통령이 갚아야 할 짐이기도 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전 전 대통령의 참회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