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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형은 그래도 갈 곳이 있네요 /김동현

  • 김동현 미스터동 대표
  •  |   입력 : 2021-10-26 18:38:4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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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창업했습니다. 뉴스를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주는 간단한 서비스가 저의 상품이죠. 하지만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요. 자금 부족으로 다니고 있던 아르바이트를 곧바로 그만두지 못했죠.

저는 매주 주말 경마장으로 출근했습니다. 맡은 업무는 썰매장 진행요원이었습니다. 경마장이 테마파크화하면서 즐길 거리로 마련한 시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썰매장을 계속해서 운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업무도 바뀌죠. 저는 흡연 계도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정해진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경마장 고객에게 안내하는 겁니다. 물론 흡연장 안내가 꼭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너무 간단한 임무에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되죠. 다만 경마장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내가 아닌 야외로 나오자마자 담배 생각이 솟구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에 흡연 계도는 꽤 필요한 임무죠.

이때 코로나 사태로 ‘거리 두기’를 강화하면서 추가적인 임무가 저에게 주어졌죠. ‘흡연장 내 거리 두기’입니다. 그러니까 흡연자끼리 붙어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막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흡연장 안에서요. 경마장을 찾은 수백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흡연하기 시작하면 흡연장은 거대한 굴뚝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열심히 외쳐야 했죠. “거리를 띄우고 담배 피우셔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오래된 화물차에서 뿜는 까만 연기를 그대로 마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담배 연기가 너무 자욱할 때는 숨을 참아보기도 했습니다. 담배 연기를 덜 맡을 유일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KF94 마스크도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해줄지언정 담배 연기까지 막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저는 마냥 그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정해진 자리에 벗어나면 혼나니까요. 대부분 20대 초중반인 아르바이트 동료와 부당함을 논의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죠.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당하는 경주마처럼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제가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일이 터집니다. 나이가 지긋해 책임자로 보이는 직원이 흡연장에 왔습니다. 저의 아버지 나이대로 보였습니다. 분명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누가 흡연장 안에 청년들을 몰아넣었어”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 옆에 서서 다른 중간 간부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잘하고 있다.”

실제 저의 친아버지였다면 그 자리에서 저를 데리고 나갔을 겁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가만히 놔둘 리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민 제보나 언론 보도에서 ‘경마장 흡연장 내 거리 두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해 나가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귀한 아들과 딸을 배치하는 모습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간 간부도 아닌 책임자로 보이는 직원의 “잘하고 있다” 발언은 참 서글펐습니다.

그날 저는 곧장 사표를 냈습니다. 창업했으니 진짜로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할 때가 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와 함께 일하던 한 동생의 말이 아직도 가슴 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형은 그래도 갈 곳이 있네요.” 저는 담배 연기에서 벗어나지만 그 동생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치사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경마장을 그만둘 때가 요즘처럼 쌀쌀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떠오릅니다.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덕분에 빨리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서요. 제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인 셈이죠. 하지만 “형은 갈 곳이 있어 부럽다”던 동생에게는 아직도 미안합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제 회사에서 직원을 뽑으면 기계의 부속품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요. 회사 성장에 노력해줘야겠지만 그 또한 지구에서 유일하며 아름다운 존재임을 잊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갈 곳이 있다”고 저를 부러워하던 동생은 지금 공무원이 됐습니다.

미스터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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