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보답하겠습니다.” 사고를 친 야구선수들이 복귀 시점에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했던 말, 5년 전쯤 한참 유행했다가 야구팬의 철퇴를 맞고 쑥 들어간 이 수사가 다시 나오고 있다. 40년 전통의 한국프로야구(KBO) 리그를 중단시킨 ‘방역 스캔들’ 당사자에 의해서다.
그 난리가 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지난 7월 코로나19 상황에서 서울 원정 숙소에 외부인을 끌어들인 뒤 술판을 벌여 이른바 방역 파동을 촉발한 NC 다이노스의 박석민 박민우 이명기 권희동은 KBO로부터 7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시즌 아웃됐지만, 이 외 추가로 밝혀진 방역수칙 위반 선수들은 벌써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한화 이글스 투수 윤대경과 주현상은 이달 초 1군에 복귀해 롯데 자이언츠 등과의 경기에 출전, 활약 중이다. 이들은 서울 원정 숙소에서 은퇴 선수의 연락을 받고 찾은 방에서 외부인 여성 2명과 사적으로 만난 사실이 적발돼 KBO로부터 10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이들이 만난 여성 2명은 이튿날 방역 파동을 일으킨 NC 선수 4명과 동석해 술판을 벌이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리그 중단을 초래한 인물이다. 이날 한화 선수들은 방을 나가려다가 키움 히어로즈 투수 한현희 안우진과 마주쳐 외부인 여성 등과 6분 정도 한 공간에 있게 되면서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방역수칙을 위반, 징계를 받았다.
팬들의 분노를 더 키운 건 키움 선수들이 한밤중에 경기도 수원 원정 숙소를 무단이탈, 서울까지 달려와 원정 술판을 벌였다는 점이다. 한화 선수들이 나가자 한현희와 안우진은 장시간 이들 여성과 술자리를 가졌고, KBO에 의해 36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어느덧 출장 정지가 풀려 안우진은 23일 복귀전을 치르고, 자체 징계(15경기 출장 정지)가 추가된 한현희는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야구팬은 가볍디가벼운 처벌은 물론 성적 앞에서 얼굴을 싹 바꾸는 구단의 태도에 분노한다. 올림픽 휴식기 이후 프로야구 후반기가 시작됐을 때 키움 홍원기 감독은 “징계가 끝나도 한현희와 안우진을 쉽게 뛰게 할 생각이 없다”며 연내 복귀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감독이 선수 기용을 안 하겠다는 말보다 더 강력한 제재는 없으므로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처벌이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한 달여 만에 그 말을 180도 뒤집었다. “(두 투수가 빠짐으로써) 많은 선발투수가 지쳐서 과부하에 걸려 있다”며 부진한 성적에서 탈출하고, 가을야구를 향한 막판 경쟁에 뛰어들고자 이들의 복귀를 허락했다고 말했다. 마운드에 복귀한 이들은 곧 “야구로 보답하겠다”며 속죄투를 날릴 것이다. 이 팀의 송우현이 한참 방역 파동 중 음주운전으로 웨이버 공시됐는데, 팬들은 “야구를 잘하면 솜방망이 징계, 시원찮으면 전격 방출”이라며 팀의 이중잣대를 조롱한다.
선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리그 중단을 촉발한 NC의 이동욱 감독 역시 구단 자체 징계(10경기 출장 정지)만 받고 다시 지휘봉을 잡았고, 처벌 대상 선수 중 한 명은 이번 징계로 인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갖추지 못해 구단으로선 더 이득이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는 뒷말도 들린다.
리그 중단을 초래한 방역 스캔들로 야구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부르짖었고, 등돌린 팬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당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실상은 눈앞의 성적(돈)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야구계가 외쳤던 ‘클린 베이스볼’ 의지는 초유의 위기 앞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야구계가 간과한 게 있다. ‘이기기만 하면 최선’이었던 스포츠는 이제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메달을 따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도전을 하는 이들에게 열광하고, 자신을 이긴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주며 그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모습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는 높은 스포츠 관전 문화를 가진 팬들이 있다는 점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확인했다. 성숙한 팬들에게 잔꾀가 통하지 않음을 그들은 언제 깨달을까.
생활레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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