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민간기업에 공공계약 입찰 때 가점을 준다고 공표하고선 10개월이 지나도록 시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생활임금 조례를 개정해 관련 장려 규정만 만들었을 뿐, 아직 구체적인 시행 계획은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헛생색을 낸 셈이다. 생활임금을 밑도는 박봉에 시달리는 민간기업 노동자를 희망고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활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임금으로, 주거비 교육비 물가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저선의 임금인 탓에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2013년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를 필두로 국내에 생활임금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부산시는 2018년부터 시행했다. 지금은 시와 시 산하 공공기관, 시 민간위탁 사무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생활임금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려면 민간기업의 도입이 급선무다. 시가 공공계약 입찰 가점제를 시행하려는 이유다. 그런데 시가 방침만 밝힌 채 후속 실무작업에는 손을 놓고 있으니, 과연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2014년 광역지자체 중 처음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한 경기도는 2019년 민간기업 가점제를 시행했다. 도나 도내 시·군의 공공계약에 응찰하는 민간기업이 해당 사업의 신규 채용자에게 생활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확약서를 제출하면, 신인도 평가 때 직원 한 명당 0.2점(장애인은 0.4점)의 가점을 준다. 이를 통해 경기도는 20여 곳의 생활임금 확약 기업을 확보했다고 한다. 생활임금은 소비→생산→고용→소비 증대의 지역경제 활성화 선순환을 이끄는 동력이다. 경기도가 생활임금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건 그런 인식에서다. 이와 달리 부산시는 시행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다고 하니, 생활임금의 중요성과 확산 필요성을 깨닫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부산 공공기관과 시 민간위탁 사무기관의 생활임금 시행에도 문제가 있다.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1425명 중 생활임금을 받는 사람은 65.6%(935명)뿐이다. 시 민간위탁 사무기관의 생활임금 적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다. 정규직은 454명 중 92.1%(418명)가 생활임금을 받는 반면, 비정규직은 149명 중 79.2%(118명)로 그 비율에 못 미친다. 가뜩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커 소득 양극화의 주 요인으로 꼽히는데, 생활임금까지 차별 적용을 받는다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생활임금을 민간기업에 전파하기 앞서 이런 차별부터 해소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민간기업에 전파하다간 나쁜 선례가 될 공산이 크다. 최저임금에도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간 차별이 생활임금에서 발생한다는 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