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서울에서 실시된 보궐선거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생 특정 정당의 볼모로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자는 제의였다. 회합 결과 ‘그래도 우리는 꿈을 꾼다’는 것이었다.

오래전 어떤 대선경선후보에게 “도대체 ‘왜’ 후보로 나섰느냐? 대권을 잡으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그와 같은 일을 왜 ‘본인’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의했다. 이와 같은 질의는 공직선거에 나서는 그 어떤 후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궁금한,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라 대답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통상 대선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제시해야 한다. 비전과 프로세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기 국정 평가와 교훈 속에서 배태되어 ‘시대정신’으로 모아진다. 최근 후보들이 성장과 공정, 공정과 상식 등을 주장하는 것을 보니,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으로 보인다. 그런가!

많은 후보들이 앞 다투어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프로세스가 빠져있지만 추후 보완될 것으로 믿는다. 후보들은 대권을 잡으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왜 나 아니면 안 되는지 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어필해야 한다. 또한 매체, 오피니언 리더, 각 분야의 전문가 들은 후보들이 제시한 비전과 프로세스를 치밀하게 검토하여, 알기 쉽게 정리한 후 반복해서 알려야 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만 제시된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코로나19 등 어려운 현실에 생활까지 바쁘다. 그럼에도 혹여 하면서 희망 가득한 미래를 꿈꾸며 후보들을 주시하고 있다. 공직후보자들은 아무리 철저한 검증을 요구한다고 해도 감내해야 한다. 대선경선후보들은 이미 여러 공직과 일정한 검증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안다. 다만 후보의 과거사 등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미필적 고의를 범할 수 있다.‘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경구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판단은 유권자 몫이라는 것이다. 검증의 기본은 공·사 간 여러 행위 과정에서의 적법 절차 준수 여부이다. 법치국가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써 의법 처리 등으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상국가가 아니다. 예외적으로 행위나 송사 과정에서 사법적으로는 무죄지만,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들이 왕왕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선거기간 중에 제기된 별의별 의혹이 선거가 끝나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검증의 핵심은 국정 운영에 대한 직무 능력과 비전, 제시한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검토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선거 기간은 너무나 짧아 이것을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충분히 숙의하고 치열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보 경선 시기부터 본격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우리에겐 남겨진 시간은 겨우 6개월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후보자들은 자세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적어도 대권을 꿈꾸는 후보라면 감탄고토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와 당당하게 맞서야한다. 지난 대선 때의 일이다. ‘헌법 개정’과 ‘모병제 도입’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유력 후보자들이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런데 막상 선거에 임박하자 지금 당장 손해를 좀 본다 싶어서인지, 시기 상조 등의 핑계로 외면했다. 이번에는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제6공화국’에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정치·사회 일각에서는 낡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여 ‘제7공화국’을 예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어떤 경선 후보도 헌법 개정을 주장했다. 헌법개정의 필요성이 공감된 지 오래라, 내용과 방향은 상이할 수 있지만 향후 더 많은 후보들이 주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제7공화국의 헌법에는 시대적 요청과 흐름인 사회권을 확대 강화시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모병제 도입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검토됐다. 이후 대선 때만 되면 깜짝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모병제전환위원회를 구성하여, 편익에 대해 7년간이나 검토했다. 하지만 우리는 위원회 구성은커녕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검토조차 된 바 없다. 지난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가 주장하다가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비켜갔다. 대선 경선 후보들이 모병제 도입에 찬성하는 이유와 목표는 평화 군축, 정예강군, 병영 문화 개선을 통한 군 인권 개선, 새로운 일자리 창출, 군내 적폐 청산, 직면한 인구 절벽등으로 다양하다. 이미 많은 문제가 발생했으며, 현재와 미래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 충분히 예견됨에도 전혀 대비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의 책임이다.

이번 후보 경선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비전과 프로세스에 대해 숙의하여 충분히 검토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국립 일제 강제동원역사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