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보러 서울 갔다 왔습니다.” 이 코로나 시국에 어딜 다닌다는 것도 좀 부담스러운데 얼마 전 지인에게 근황을 물으니 돌아온 답변이다. 언제부턴가 볼 만한 전시와 공연은 모두 서울에서 열린다. ‘제2의 도시’ 명성이 위태로운 부산에서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서울로 달려간다.

나 또한 진행하는 일과 관련해 서울의 여러 박물관을 관람해야 하는 일정이 있어 조심히 서울로 향했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새로 개관했다고 해서 가 봤다. 이전 서울시장의 의지로 시작해 3년 만에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의 방대한 공예의 역사와 현대 공예까지 잘 정리돼 있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박물관이 하나 더 생겼는데 또 서울이다.

서울엔 참 많은 것이 있다는 현실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역에도 지역만의 고유한 미술관, 박물관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자연과 풍토가 다르고 문화와 역사가 다르니 다양하게 조성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찌 이리도 더딘지….

최근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간송미술관을 볼 때 안타깝지만 문화의 보존과 대중의 향유를 위한 개인의 역할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가 빛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지역의 문화적 균형발전이며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 특화된 문화시스템을 지역에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기의 기증이라는 ‘이건희 컬렉션’을 두고 기증품 특별관 건립을 지시한 대통령의 의지는 서울이었을까.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두고 ‘이건희 미술관 비수도권 건립 기초지자체 연대’가 발족해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고 한다.

이 연대에 참여하는 지자체는 부산 해운대·동·부산진·수영·강서구, 대구 중·동·서·남·북·수성·달서구·달성군, 울산 중구, 경남 밀양시·고성군, 경북 울진군, 전남 여수시, 충남 아산시 등이다. 이 외에도 인천, 세종, 용인, 평택, 경주, 진주, 창원, 남해, 서산, 의령 등 거의 전국에서 긴급히 기자회견도 하고 유치를 희망했다.

치열한 지역 간의 경쟁이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서울 용산구와 종로구 중 한 곳에 ‘이건희 기증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12월쯤 발표만 남았다고 한다. 서울 송현동이 ‘이건희 미술관’의 유력한 후보지라고.

현 서울시장 또한 송현동 부지 주위에 경복궁, 인사동, 현대미술관, 공예박물관이 있어 관광객이 ‘원스톱’으로 다 볼 수 있는 위치·지리상 장점이 있다고 당연히 송현동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이며 결정을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한다. 서울 송현동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문화관광 도시 서울의 초특급화가 원톱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역의 과열 경쟁으로 처음부터 지역에 건립하는 것은 제외했다는 후문도 있다. 과열 경쟁은 그만큼 절실한 지역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상기의 연대 협의체는 차기 대선후보자에게 지방 건립을 공약하도록 해 국토균형발전과 문화 분권의 힘을 키우자고 외친다.

또 서울인가. 서울, 대한민국 수도,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관광의 중심지이다. 모든 길은 서울로 향하고만 있지 않은가, 지역에서 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외쳐야 하며 얼마만큼 더 실망해야 할까.

이제 지역으로 향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작은 지역 어디라도 좋으니 문화로 융성하는 지역 발전의 선례를 보고 싶다. 지역 소도시 그 어디라도. 다시 가고 싶은 그 장소가 전국 각지의 여러 방향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이 무슨 뜻인지만 알면 되고 가장 단순한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1년에 총인구의 100배가 넘는 관광객이 온다는 가까운 이웃나라의 작은 섬, 나오시마의 총인구는 3000명이 조금 넘는다. 최근 나오시마의 상징이던 선착장의 노란 호박 미술작품이 태풍에 손상되었다는 기사가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나오시마를 걱정했다. 손상된 미술작품 만을 걱정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그곳에 있는 문화와 자연, 그 모든 것을 걱정하며 아끼는 마음들이다. 왜냐하면 다시 가고 싶은 그 지역이니까.

올아트22C 문화기획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