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팔로하는 인플루언서 중 가수 이적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매일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현인의 말을 듣고, 매번 이 식사가 인생 마지막 끼니인 것처럼 먹게 됐다.” ‘이적의단어들’이란 해시태그를 단 이 글의 제목은 ‘부작용’이다. 많은 이들이 뜨끔했듯이 나도 느끼는 바가 컸다.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라는 메시지를 우리는 합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합리화시켜 받아들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제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부작용과 무책임을 낳는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일상의 지속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 보면 그 속에서 관성이 생기고 그것은 한 사람의 고유한 습관이 된다. 오랜 시간 굳어진 습관 앞에서 후회 없이 살겠다는 다짐은 한낱 콩깍지와도 같(거나 환상에 불과하)다. 확실한 계기가 있지 않거나 제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다는 뜻에서 그렇다. 그래도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매 한가지일 테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아내는 것일까? 팬데믹이 장기화된 요즘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아무래도 잘 산다는 기준과 방식은 사람 수만큼 다양할 터. 누군가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서 안정을 느끼는 삶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노동하며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보내는 삶을 추구한다. 나는 비록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일찍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빈도를 줄여 그 에너지를 하고 싶은 일에 쏟아 붓기로 선택했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긍정적으로 나를 돌볼 시간을 확보해왔다. 그럼으로써 경제적으로 여유를 부릴 처지는 못 된다. 하지만 돈에 소모되는 삶보다 불안에 내쫓기는 게 오히려 편한 편이다.

어쩌다보니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며 산다. 지금은 칼럼을 쓰고 있고, 어떤 날은 글쓰기 강의를 하고, 또 어떤 날은 출간할 책을 기획하며 저자와 미팅하고, 가끔은 연극 무대에도 선다(그 외에도 소소하게 다양한 일을 한다). 이런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선배는 내게 ‘철저히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보다 일상에서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주로 추구한다는 뜻의 소확행. 얼핏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내비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소확행의 범주를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는 정도에 가두는 것은 또 아니지 않나 싶어 좀 더 깊게 들여다본다. 그랬더니 미래보다는 현재의 만족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는 게 훨씬 적합한 의미겠다.

나는 이제 소확행이라는 말을 표면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과거에 나는 싫은 건 곧 죽어도 싫었지만 이젠 싫은 것도 제법 잘 견딘다. 가령 나는 혼자서 일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클라이언트나 협업자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하고 피드백을 나눠야 한다. 콜포비아(Call phobia)를 느끼는 나로서는 피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참아낸다.

나는 강의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가진 것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일은 나 자신의 성장과 공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서툰 사람이라 말을 할 때 실수를 덜 하려고 몇 배로 강의 준비를 한다. 준비하는 시간은 고역이지만 그것이 내게 가져다주는 경험의 질에는 환호한다.

어떤 게 값지게, 잘 살아가는 것인지 늘 궁금하다. 흔히 20대와 30대는 열정과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시기고, 40대와 50대는 그것을 재력으로 바꾸는 시기라고 하던데, 나에게도 이것이 통용되는 말일지는 잘 모르겠다. 40대에는 지금과는 또 다른 커리어로 열정을 토해내고 있을지 누가 알까.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불안은 해소될 수 있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오늘도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가늠해 볼 뿐이다.

작가·‘일 인분의 삶’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