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선거가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새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시대정신(zeitgeist)을 잘 인지하고 실행에 옮길 사람이라고들 한다. 2021년 현재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할 대통령이 마음에 새겨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허구한 날 하는 소리들, 통합? 화합? 협치? 정치인들의 진심일까?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시도해 봤었다. 아군과 적군 모두로부터 뚜드려 맞았다. 광역자치단체장 한 사람이 협치를 진지하게 시도했고,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 그는 정치를 떠났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모두 공정을 앞세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다. 메시지가 모호한 것이 비정상은 아니다. 현재 누가 공정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공정한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의미를 따져 볼 만한 한 가지 단서는 있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손해를 보는 쪽이 수긍한다면 그 정책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없을 것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개념이 그가 말하는 공정의 키워드라 하는데 그 취지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 정책은 전 세계적 산업구조의 변화를 예측해 볼 때,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고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다만 이 지사가 경기도에서 시행했던 맛보기 기본소득정책 실행방식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눠주는 공짜 돈에 사람들이 중독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고, 어쨌거나 기본소득정책을 추진하려면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국민을 설득할 방안이 마음속에 있는지가 의심이 갈 뿐이다. 윤 전총장의 공정은 아직까지는 아무런 내용이 없어 보여 뭐라 평할 거리가 없다. 자신이 검사로서 불공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법에 의거하여 형사처벌 받게 했으니 자신이야말로 공정의 화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좀 낯뜨거운 생각이 든다.
필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한 시대정신과 향후 대한민국을 대표할 대통령으로서 요구되는 품격은 일치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솔직함과 솔직하기 위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에게 솔직함을 요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잘 알고 있다. 정치 현실이 솔직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에 아직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필독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지나치게 솔직해서 항상 설화에 휩싸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였다. 그래서 속칭 ‘노빠꾸’ 정치를 할까 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노빠꾸’인 건 맞는데 솔직한 ‘노빠꾸’가 아닌 것 같아 의아할 뿐이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광장에서 목메게 불렀던 노래 중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구절이 지금도 입에서 맴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다수가 켜준 밝은 조명 아래서 출범했고 그 밝은 조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전체를 밝혀주는 조명인 줄 알았던 그 조명이 일부만을 밝혀줄 뿐 조명이 비치지 않는 부분, 아니 일부러 비추지 않는 부분의 어두움은 더 칠흑 같은 느낌이다. 어차피 밝음과 어둠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서, 어둠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너무 밝은 조명을 비출 필요도 없다. 어슴푸레 라도 보여서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조명을 비추는 곳은 눈이 부셔 안 보일 정도로 밝고, 비추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알려고 드는 것조차 반역으로 단정 짓는 것 아닌가 싶다. 허세부리는 걸 의미하는 ‘Bluffing’과 책임 떠넘기기를 의미하는 ‘Blame Game’이 문재인 정부와 함께 연상되는 영어 표현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치지도자의 솔직함과 솔직하기 위한 용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 솔직함은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 그 솔직함은 타인을 공격하는 데 보다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 쓰여야 할 것이다. 용기가 만용으로 곡해되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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