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뭡니까?’라는 물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취미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라는 맥락 없는 고민을 한다. 고상한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진짜로 좋아하는 걸 찾기 어렵다. 취미는 내가 주인공이고 나를 신나게 하는 행위다.

골프나 도자기 수집처럼 있어 보이는 취미도 좋고 연애 시절의 단골인 독서, 음악감상, 영화감상도 좋지만 그악스럽지 않아도 나를 찾을 수 있는 취미는 많다.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와 같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전설의 수첩 몰스킨, 문방구에서 파는 만원짜리 만년필이나 십자수 같은 전통수공예의 아날로그 감성은 취미의 소재로 매력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우리는 이 철학자의 말처럼 인간 행복의 원천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나의 즐거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신과의 공감이 우선이다. 그 공감은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계산되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찾아 해결할 때 가능해진다. 상대가 무얼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연애의 노력 만큼이나 내 마음에 드는 나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취미가 필요한 이유다. 취미는 오늘의 맥박을 달라지게 한다.

주위에서 나의 글씨체가 예쁘다고 한다. 군 생활에서는 필경사(筆耕士) 노릇을 했다. 이 자그마한 소질을 살려 이웃에게 작은 액자라도 선물하고 싶어 사이버 캘리그라피 지도사 과정을 수료했고 1급 자격증도 땄다. 어머니 손편지 같은 서툰 듯 예스러운 글씨체를 찾다가 삼천포 박재삼 문학관에 걸려있는 시 ‘아득하면 되리라’ 등 8편의 글씨를 만났다. 사진으로 찍어 4호와 8호 붓에 맞도록 확대를 했다. ‘인쇄품질 빠름’과 ‘잉크 절약모드’로 하여 출력을 하니 글씨가 외곽선만 인쇄되어 연습에 안성맞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해 질 녘 눅은 더위에 건듯 부는 바람이다. 붓을 잡는다. 그냥 필사(筆寫)가 아니다. 글자 위에 나를 바친다. 그다음은 흐름에 맡긴다. 시인의 은유와 서예가의 진실을 따라가다 보니 마음이 정제(精製)된다. 틈만 나면 붓을 잡는다. 즐기면서 충전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취미가 생겼다.

‘릴케가 머무른 두이노성’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등장하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릴케와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해안가 절벽의 두이노성과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는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틈틈이 ‘부산문화탐방’을 함께 하는 친구 2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코로나19는 어찌 될지 모르니 비대면(Untact) 해외문화탐방 한 번 해보자. 보낸 자료 참고하여 개인 여행이라 생각하고 각자가 여행계획을 세워 보자.’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이탈리아와 일본을 거쳐 김해공항으로 돌아오는 8박 9일간의 모든 비행 일정과 현지에서의 활동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방문지에 대한 자료 조사는 물론 숙박 장소와 맛집, 이동방법, 문화 활동 계획 등 모든 세부 일정을 짜고, 탐방 결과를 A4 10페이지 내외로 작성하여 서로 교환하자고 했다. 여행 준비만 하고 못 가더라도 크게 속상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여행의 아름다움은 떠났을 때가 아니라 떠나기 전의 설렘으로 밤잠 설치는 한 인간의 뒷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수도 아바나의 방파제에서 들려오는 복잡한 리듬의 룸바 드럼 소리 들으러 가는 쿠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가고 싶은 곳 정하고 일정을 짜면서 재미있어하는 게 취미가 될 것 같다.

인생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취미는 ’하고 싶은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서 주기적으로 즐기는 창조적 행위이자 생기를 얻는 치유의 놀이다. 수동적인 삶에 자발적 기쁨을 섞는 것, 이게 취미의 본질이자 사는 재미 아닐까?

교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