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지만 소설로 먹고 살지는 못합니다. 소설 쓰는 일을 본업으로 여기지만 생업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생업은 프리랜서 강사입니다. 비정규 계약직이고 저소득에 가까운 벌이지만 기본적 생계는 감당이 되었기에 만족했습니다. 2020년 2월, 팬데믹 이전까지는.

몇 달 전부터 유독 왼쪽 가슴이 아팠습니다. 큰 돌 하나를 올려 놓은 것처럼 가슴이 무겁고 갑갑했고 포크로 긁어내리는 것처럼 속이 쓰렸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어깨와 날개뼈까지 아파 자다 일어나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통증의 한 증상이라고 합니다. 헛웃음이 났습니다. 마음과 머리로는 괜찮다, 괜찮다며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몸은 아니었나 봅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기태(송강호 분)네 집에 걸려있던 액자 속 가훈 기억하세요? 와이파이도 안잡히는 반지하방에 사는 이 비루한 가족의 가훈은 아이러니하게도 ‘안분지족(安分知足)’입니다. 제 분수를 지키며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좀 삐딱하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네 삶과 환경에 불평하지 말고 더 많은 것도 바라지 마라. 안분지족이 가난의 해시태그도 아닌데 이미 없거나 너무 적은 이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로는 너무 가혹합니다.

많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강요된 안분지족으로 1년 이상을 버텨왔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뉴스가 아니어도 주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재난 지원금을 지급할 때마다 지급 대상 기준을 놓고 정부의 방침은 매번 널을 뜁니다. 얼마나 못 사는 지, 얼마나 못 버는 지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한 푼이 아쉬워 증빙서류를 떼느라 이곳저곳으로 며칠을 뛰어 다닌 그들에게 어찌 자족을 권할 수 있을까요.

장욱진의 그림을 봅니다. ‘모기장’이란 제목의 작은 그림입니다. 종이 가득 투박한 질감의 단칸방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방 구석으로 연결한 모기장 안에 작고 마른 남자아이가 머리 뒤로 두 손을 괴고 태평하게 누워 있습니다. 살람살이라고는 밥그릇 하나, 요강, 등잔이 전부입니다. 세상과 경계를 두고(모기장) 일용할 음식(밥그릇), 배설(요강), 빛(등잔) 이렇게 최소한의 세 가지만으로 소박하고 심플한 삶을 살고 싶은 작가의 이상이 담긴 그림입니다.

실제 장욱진이 살았던 시골 외딴 집의 풍경도 이와 흡사했고 화가는 그 집에서 자족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형편은 비슷한데 나의 심신만 이렇게 괴로운 건 비움과 내려놓음이 자발적 가난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5차 재난지원금의 지급 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소득하위 80%는 1인당 25만 원, 소상공인은 최대 2000만 원까지 지원된다고 합니다. 정부가 이번에는 소득상위 20%에게 안분지족을 부탁하는군요. 받는다고 좋아하는 이도, 못 받는데 괜찮은 이도 없어 보입니다. 국민을 재산과 소득 정도에 따라 줄 세우고 받는 이와 못 받는 이로 양분하여 모두를 씁쓸하게 만드는 작금의 시대에 마음 불편해집니다. 오직 바라는 것은 정상적인 생업을 통해 필요한 만큼 알맞게 버는 일상입니다. 지금처럼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느라 생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 경제적 안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제적 안정이 반드시 큰 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수를 지키고 검소하게 살면서 단순한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의 삶을 자발적으로 추구할 만큼의 경제적 자립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삶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선승 타이센의 말입니다. 더이상 지치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우리 모두 다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