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가 돌아왔다.” 동해가 올해 오징어 풍년을 맞았다. 어획량이 작년에 비해 수십배 늘어난 것이다. 수온이 적합해진 영향도 있지만 중국 어선들의 출몰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 북한이 입어료를 받고 동해 어장 일부를 내준 2004년 이후 오징어를 싹쓸이하던 중국 어선들이 태풍이 유난히 잦았던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덕택에 한동안 가격이 너무 비싸 ‘금징어’라 불리던 오징어를 맛보기 훨씬 수월해졌다.

전국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울릉도 오징어는 대부분 잡은 그날 생물 상태로 들여와 항구에서 손질해 해풍에 말린다. 간수가 많이 배지 않아 짜지 않고 씹을수록 달다. 울릉도 오징어 맛의 비결은 동해의 거센 물살을 가르느라 단련된 육질과 함께 이런 가공법에 숨어있다. 바다 조업 기간 내내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배에서 얼려 보관하는 선동 오징어도 있다. 맛이나 풍미는 생물에 비해 당연히 떨어진다.

오징어가 최근 뜬금없는 맥락에서 소환되고 있다. 경북 포항 일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자칭 ‘수산업자’의 로비 의혹 사건에서다. 이 업자는 선동 오징어 사업에 투자하면 대박이 난다고 속여 100억 원대 사기를 치다 구속됐는데, 경찰 수사 과정에서 금품과 편의를 제공한 정계 관계 언론계 인사의 명단이 나온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쳤던 특검도 포함돼 있어 전국이 떠들썩하다. 리스트는 갈수록 불어나 현재 30여명에 달한다. 문제의 업자가 과거 다른 사기 사건으로 복역하다 특사로 출소한 전력이 있어 화살은 청와대까지 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산업자 게이트’ ‘오징어 게이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아들이 구속된 ‘한보 사태’를 두고 ‘게이트’란 말이 붙더니 이후 정권마다 비슷한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 말기 ‘진승현·이용호·최규선 게이트’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박연차 게이트’,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영일 포항 출신 인사들이 연루된 ‘영포 게이트’,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초래한 ‘최서원(개명전 최순실) 게이트’가 그랬다. ‘오징어 게이트’ 역시 힘 있는 자와 그 힘을 필요로 하는 자의 욕망이 서로 뒤엉킨 결과라는 점에서 앞선 게이트와 본질은 다르지 않다. 오징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산물 중 하나다.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같은 짓을 한 사람들 때문에 게이트란 꼬리표를 달게 된 오징어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