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병상에 계시는 장인어른께 드리는 편지이다.

그림= 서상균 기자

나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름방학 숙제 중에 곤충채집이 있었다. 나는 여름방학 곤충채집 숙제를 하기위해 시골에 가야 했다. 서울역에서 기차타고 외가가 있는 대전에 내린 후 버스타고 유성에 있는 과수원에 가서 매미와 잠자리를 잡았다.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과 사이다를 들고 열차를 타려고 철판계단을 밟을 때 울리는 덜컹소리가 아직도 설레인다. 그러나 잠자리채 들고 매미와 잠자리를 잡으려 해도 잘 잡히지 않았다. 관리원은 낮에 곤충채집하려고 애쓰는 나를 보고 해질무렵에 과수원 나무울타리에 붙어서 잠자고있는 잠자리를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낮에 나무 높이 붙어 있는 매미도 저녁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곤충채집 숙제의 대상이었던 매미가 석양이 저물고 있는 지금 나에게는 이 지구상에 잠깐 머물다 가는 생명체로 보였다. 매미의 일생을 보면 한여름철에 짝짓기한 후 나무껍데기에 알을 낳는다. 다음해에 나무껍데기에 붙어있는 매미알은 나무를 타고 땅속으로 들어가서 애벌레 상태로 지낸다. 땅속에 있는 애벌레는 3~4년 후에 나무를 타고 다시 올라가서 껍질을 벗고 성충매미가 된다. 이 세상에 성숙된 생명체로 태어난 매미는 한 여름철 맴맴하면서 암컷과 짝짓기한 후 후손을 남기고 늦여름에 생명을 마감한다. 100개월동안 알과 애벌레로 지내다가 성충이된 매미는 한두달을 이세상에 잠깐 살다가 사라진다. 이와같이 이지구상에 태어나게된 생명체는 잠깐 머물다가 사라져야 한다.

땅속에 있는 씨앗이 봄이 되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 꽃이 핀다. 꽃은 화려한 색깔과 향기로 벌과 나비를 유혹한 후 암술과 수술이 만나서 수정되면 열매를 남기고 바로 시든다. 이 우주에서 제일 작은 소립자인 양자 중성자 중간자가 모여서 원자핵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또 하나의 소립자인 전자가 붙어서 수소 원자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고분자가 되고 여기에 유전자가 고착되어 세포가 만들어진다. 그 결과 식물 동물을 만들고 멋진 인류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만물은 무에서 시작해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무로 돌아 갈 뿐이다.

정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서 90일간 자란후 이 세상에 나온 정자는 2가지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하나는 여성이 배란시기가 아닐 때 부부관계후의 정자는 2~3일 동안 잠깐 홀로 살다가 그냥 사라지는 운명이다. 둘째는 배란시기에 난자와 만난 정자는 자신의 온 몸을 불태워서 생명체인 수정란을 만들어 놓고 종족보존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후 역시 사라지는 운명이다. 정자가 열심히 노력하고 착실하게 산다고 여자의 난자와 만나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운명일 뿐이다. 여성의 배란시기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자궁에 착상이 된 후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인간도 모두 무에서 왔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이 지구상에 잠깐 머물다가 다시 무로 돌아갈 것이다.

동화속에 나오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지 않았다면 잠을 자면서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그 대신 왕자를 못만난 공주는 가정과 자식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적인 왕자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난 공주는 생명을 얻었기에 결국은 죽어야하는 운명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왕자와 만나서 아들, 딸 낳고 행복과 보람을 얻었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치명적인 성병인 생명(LIFE)이라는 불치의 질병을 갖고 태어났기에 이 지구상에 잠깐 머물다가 사라질 뿐이다.(LIFE is Fatal Sexually Transmitted Disease.) 장인어른의 빠른 쾌유를 기원드린다.

세화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