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다가 인간 본성에 대해 언급하는 말을 들었다.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Chloe Zhao)가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삼자경(三字經)’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그 본성이 선하다’(人之初 性本善). 그녀는 이런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인간 내면의 선함에 대한 신념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가 감독한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의 노매드는 유목민이란 뜻인데, 이 영화에서는 안정된 직장이나 자기 집이 없고 어디 마음 붙일 데가 없이 떠도는 사람을 주목했다. 이런 수상 소감을 듣고 필자는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철학노트를 펼치며 성선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차이는 인간을 어느 정도 신뢰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의 차이로 나타난다. 인간의 악한 측면을 주목하는 쪽에서는 냉정하게 제도나 법률로 통제하고 다스리려고 한다. 인간에게 많은 자유를 허용할수록 그것은 결국 혼란과 방종을 초래할 것이라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렇게 보는 경향의 극단에 전체주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악설의 관점에는 인간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권모술수를 강조한 사상가로 오해를 받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상처가 심각할 때에는 치료를 위해서라면 항생제가 비록 독약이라고 해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가 찬미한 강력한 권력이란 바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쓰는 효과적인 치료약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한 다음에는 그런 극약 처방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 역시 인간을 원래 악마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만 선한 본성을 잃어버린 존재로 보았다.

한편,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보는 성선설은 어느 정도 이상주의적이고 인간의 자치 능력을 신뢰한다. 그래서 가급적 대화와 협의 조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성선설은 성악설보다 인간은 스스로 고난을 극복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더 확고하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동양고전 ‘중용(中庸)’은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고 한다(天命之謂性)’는 막연한 말로 그 첫 문장이 시작된다. 이것은 ‘하늘이 사람들에게 착한 본성대로 살기를 명령했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간의 성선(性善)을 선언한 엄청난 말이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정의롭고 배려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이런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는 인(仁)과 의(義)는 이미 선천적으로 마음속에 있으며 그것이 상하지 않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성선설의 핵심은 인간의 자연적인 선한 본성에 대한 확신이며 이미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선한 가치를 자유의지로 계발해나가는 데 중점이 있다.

‘노매드랜드’란 단지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점포가 없는 노점상, 일 년이 지나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계약직, 이른 새벽에 일당을 받고 일할 기회를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세계다. 또한 마음을 붙잡아 줄 가족이나 의지할 공동체가 없는 사람들, 더 범위를 확장하면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 아래의 구속된 삶보다는 거친 사막의 자유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삶을 파괴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노매드랜드’의 제작진은 부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스스로 이겨내는 용기와 희망을, 그리고 그런 사유의 기반을 이루는 성선설을 이야기했다. 영화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모욕의 환경 속에서 집도 없고 마음 붙일 데도 없는 사람들에게 기존 체제와의 투쟁보다는 서정적인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가족과의 좋은 추억, 자연 속에서 위로받는 삶, 좋은 사람들과의 우정과 상호 배려, 지구와 교감하는 힐링 여행을 통하여 고독과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를 권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이 성선설을 이야기할 때 필자는 이 영화는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주목하는 그런 쪽으로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이제 교육의 목적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직업을 얻기 위한 전문 지식의 전수,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진리 탐구, 이런 목적을 대부분의 교육기관에서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경제적 양극화, 세대 사이의 갈등, 공동체 유대의 상실과 개인적인 고립, 이런 것에 맞설 굳센 용기를 갖게 하려면 성선의 회복을 강조한 맹자의 교육론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서원이나 향교를 방문하면 여기서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교육이란 꾸준한 학습을 통하여 인간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곁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교육철학인데 ‘노매드랜드’가 그것이 소중한 것이었다고 다시 알려주고 있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