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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바다처럼 푸른 콘텐츠는 없다 /정일근

  •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   입력 : 2021-06-08 19:21:3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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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출생지는 경남 진해(鎭海)입니다. 벚꽃의 도시로 유명하지요. 그러나 도시 이름에 ‘해(海)’ 가 있듯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고향입니다. 일제강점기 군항으로 개발된 후 지금까지 ‘해군의 요람’입니다. 진해는 해군이 키운 도시입니다. 저와 동무들은 동요보다 군가를 부르며 자랐습니다. ‘커다란 군함 타고 한 달 삼십 일 흔들리는 파도에 청춘을 남겼다.’ 같은 가사는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제가 취미라고 가진 것이 그 처음이 낚시였습니다. 요즘 낚시에는 장비값만 비싸게 들어가지만 그땐 낚시 장비의 자급자족이 가능했습니다. 실은 장비라고 할 수 없었지만요

제일 먼저 낚싯바늘을 구해야 합니다. 그건 진해 어시장을 순례해야 합니다. 생선장수 아주머니 노전 부근에는 언제나 다양한 크기의 낚싯바늘이 수북했습니다. 바다로 나간 어부들이 낚시로 잡아 올린 생선을 손질하면 미늘이 박혀있는 바늘은 바닥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종류와 크기 또한 다양했습니다. 제 또래들은 심심하면 시장바닥을 돌며 낚싯바늘을 주워 모았습니다. 낚싯대는 잔잔한 막대기를 챙겨 놓았습니다. 그 막대기 끝에 낚싯줄을 묶고 모아놓은 낚싯바늘 중에 작은 것을 달았습니다. 물고기를 유혹하는 미끼는 보리 밥알이 전부였습니다. 사람이나 내 낚싯바늘로 오는 물고기 또한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낚시터는 낮은 바다가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낚싯대를 던지면 물고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주로 볼락 새끼였습니다. 그때 내가 아는 물고기는 갈치 고등어 납새미(가자미) 오징어 장어 등이 전부였습니다. 볼락을 넉넉하게 잡고 바닷가 돌 위에 붙어 자라는 합자(홍합)를 채취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의 낚시를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일전에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산어보(慈山魚譜)’는 손암 정약전이 기록한 어보(魚譜)입니다. 그것도 창대란 젊은이의 바다와 물고기의 상식을 손암이 기록한 어보입니다. ‘자산어보’는 손암의 위대한 기록이나 그 방대한 지식은 당시 흑산도 청년 ‘창대’의 것이었습니다.

조선 순조 14년(1814)에 발간된 ‘자산어보’보다 11년 전인 마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며 이상한 물고기에 대한 이어보(異魚譜)가 나왔습니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순조 때의 문신 담정(潭庭) 김려(金鑢,1766~1822)의 책입니다. 순조 3년(1803년) 김려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가 그것입니다. 김려 역시 정약전과 같이 가톨릭교 신봉의 혐의로 2년 반 동안 유배 왔습니다.

우해(牛海)란 진해(鎭海) 앞바다를 이른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진해는 지금의 진해가 아니라 마산 진전면이었습니다. 당시 진전을 우산(牛山)이라고도 했습니다. 산이 소를 닮아 우산(牛山)이어서 바다는 우해(牛海)라 불렸습니다. 김려가 우해에서 조사·기록한 어류와 조개류는 약 70종에 달합니다. ‘우해이어보’에도 ‘자산어보’에 나오는 ‘창대’가 있습니다. 김려가 유배 산 집의 열몇 살 주인 아들이 김려를 모시고 다니며 이어보 취재를 도왔습니다. 저는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우해이어보’를 생각하다 문득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1878~1967)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난 다시 바다로 나가야겠네, 그 외로운 바다, 그 하늘로/필요한 건 오직 높다란 배 한 척과 길잡이 별 하나/타륜의 반동과 바람의 노래, 펄럭이는 흰 돛/그리고 바다 위 뿌연 안개, 동터 오는 뿌연 새벽뿐’. 이 시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겠네’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존 메이스필드는 15세부터 배를 탔다고 합니다. 바다가 열리는 6월이 시작되자 저 역시 바다로 나가고 싶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살아있습니다. 뱃전을 치는 푸른 파도, 하늘의 별자리를 해도(海圖) 삼아 밤바다를 지나가고 싶습니다. 목적 없이 떠나온 여행자이니 늘 싱싱한 청춘의 노래를 부르며 해류를 타고 조류를 따라,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희망봉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희망! 그건 부산 진해 마산 거제 남해 등 바다를 가진 도시들엔 희망의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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