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나홀로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전체 가구 중 30.4%를 기록한 걸로 최근 발표되었다. 불과 5년 만에 약 10%포인트 증가한 셈이다. 또한 50대 이상 고령층이 1인 가구의 61.1%를 차지한다니 예사롭지가 않다. 고령화 진행이 제일 빠른 부산 지역에서는 그 양상이 더하지 싶다. 코로나 팬데믹과 SNS 발달로 언택트(비대면 )소비나 재택근무 형태가 확산하는 것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름난 건축가 유현준은 1인 가구와 코로나 시대 도시공간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공원을 꼽는다. 시민 소통과 통합, 공동체 의식을 갖기 위한 공공의 장소가 더욱 절실하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자기 집이 좁아도 집밖 가까운 곳에 편안하게 쉬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에 1만 평짜리 공원 하나를 짓는 것보다 1000평짜리 공원 10개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그는 역설한다. 충분히 공감이 되고 마음에 와닿는 얘기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들도 같은 맥락이다. 캐나다 밴쿠버를 보자. 도시 전역에 크고 작은 공원·녹지공간이 산재하고, 가로수가 좋은 그린웨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기준거리는 250ｍ라고 한다. 뉴욕은 센트럴파크 외에도 100만 평 넘는 대공원이 6개 더 있고, 생활권의 중소 공원들이 고르게 분포한 모습이다. 이들 공원은 친환경 보행길로 네트워크를 이룬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세계 유수의 기업체와 금융사들을 불러모은 바탕에는 빼어난 도시 환경이 있다. 싱가포르는 서울 부산처럼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고밀도 수직도시지만, 도심지를 한참 걸어 다녀도 피곤함을 느끼기 어렵다. 수변과 곳곳에 보행중심의 접근로 격인 선형(線型) 녹지공간이 풍부해서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찰스 몽고메리는 저서 ‘행복한 도시’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도시 녹지는 건강한 주거공간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이 살기 좋은 공간이 되려면, 다양한 공원녹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생태용어인 ‘바이오필리아(biophilia)’와도 맥이 통한다. 즉 인간의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 ‘녹색 갈증’을 풀어줄 수 있어야 행복한 도시다. 더욱이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도심 공원·녹지 확충이 핵심적 요소다.

그런 점에서 부산은 아직 세계적 수준과 거리가 멀다. 여담으로,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한 지인은 고향 부산에 올 때마다 갑갑함을 느낀다고 한다. 수원에서는 5분 정도만 걸으면 공원을 만날 수 있는데, 부산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간 부산에도 여러 공원이 조성된 게 사실이나, 관건은 거리와 접근성이다. 도시에 아무리 큰 공원을 지어 놔도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용하기 힘들다. 예컨대 부산의 대표적 도심인 서면과 부전시장 일대만 해도, 제대로 쉴만한 공공 공간을 찾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원도심 등의 지역 간 공원녹지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자신의 공약인 ‘15분 도시’ 비전을 얼마전 내놨다. 도보로 15분 거리(2㎞ 정도)에서 일상이 가능한 생활권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육 의료 문화 교통 생활체육시설 등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역세권 복합개발로 주거·일자리 등이 공존하는 도심형 콤팩트 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방향이 바람직한 건 분명하지만, 공원녹지 면에서 15분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시민 욕구를 충족할 수도 없지 싶다.

물론 땅값이 비싼 도심에 공원녹지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다. 그러나 시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시공간을 꾸미는 것은 시장과 자치단체의 책임이자 의무다. 사실 국내에서 ‘5분 공원녹지 도시’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서울시만 해도 10여 년 전부터 이를 목표로 추진해 왔다. 산지가 많고 평지는 적은 부산으로서는 서울의 경의선숲길과 같이 선형 공원녹지 공간이 적절한 대안이다. 따라서 경부선을 지하화하고 상부를 공원녹지 등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렇게 되면 그 공간에 접한 면적들이 크게 늘어나고 배후에도 같은 파급효과를 내게 된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도심 보행길 조성사업도 크고 작은 공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그 가치와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지 않겠나.

인구 수백만의 도시에 큰 공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생활권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고 유용하다. 시민 누구나 걸어서 몇 분만에 갈 수 있는 중소 공원녹지가 도시 곳곳에 분포하고, 도심 전반의 입체적인 녹화도 더 늘어나야 한다. 모름지기 도심 속 자연은 시민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조경이 좋은 값비싼 아파트단지나 부유층 주거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공원녹지 공간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야 살기 좋은 도시다.

편집국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