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들처럼 외주용역의 사업계획서를 쓰며, 견적서를 한참 들여다본다. 제안받은 금액을 맞추려면, 혹은 경쟁력이 있으려면 아무래도 금액을 낮춰야 할 것 같은데, 포스터 1만 장은 어쨌든 인쇄해야 하고 광고 노출도 어느 정도는 보장돼야 하니 아무리 봐도 줄일 구석은 ‘인건비’뿐이다. 기획비 60, 아니 100? 0을 붙였다 뺐다 반복하면서 애꿎은 엑셀만 이리저리 만지기를 여러 차례. 결국에 ‘뭐라도 하는 게 중요하니까’라는 무적의 논리로 나와 우리 팀을 자발적으로 ‘후려친’다.

서비스업을 계속하다 보면 인건비 딜레마를 종종 겪는다. 인간이 기계가 아닌지라 ‘나’라는 사람을 1시간 동안 가동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기름과 전기가 들어가는지 알 수 없으니 인건비는 늘 계산하기 어려운 상품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문화예술 관련 서비스업은 언제나 적은 예산으로 돌아가는 인간 시장이라 이런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 최근에 나는 급기야 클라이언트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200만 원 짜리랑 400만 원 짜리, 600만 원짜리 일은 각각 어떻게 다릅니까?

뭔가 구구절절한 대답으로 어찌저찌 클라이언트를 납득시켰지만, 남은 찝찝함을 안고 집으로 와서는 그날 어떤 식으로 답변하는 것이 좋았을까 며칠 고민했다. 그게 뭐가 이상한 질문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어쩌면 물건(서비스)을 구입하는 ‘갑’의 입장에서 그 물음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내 찝찝함도 일부는 그랬다. 이제 아마추어가 아니고 전문 영역에서 사업을 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하는 일을 단계별로 가격표를 매겨서 받은 만큼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게다가 받은 돈 이상으로 열심히 했다간 다른 동종업계에서도 지탄을 받는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시장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접근 자체가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바보를 만드는, 헛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받은 만큼만 일하자. 이 얼마나 무서운 자기 기만인가. 나는 내가 하는 모든 노동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시장 논리 때문에 나의 모든 활동에 가격표를 붙이고 지불받은 만큼만의 마음과 시간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가? ‘인건비’를 내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사람을 부리는 비용(인건비)’이라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미 많은 찬사를 받은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저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중략) 우리는 각자 다른 역할을 연기했잖아요.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비단 예술 활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각의 단독자이니 사람이 해낸 작업은 대체로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작업물을 두고 경쟁시켜 순서대로 돈을 매기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이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모든 노동에는 예술적인 면모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시간’이라는 기준도 별다르지 않다. 결과물을 만드는데 단순히 소요된 시간 외에도 화장실에서 문득 떠올린 아이디어, 언젠가 봤던 책의 문구.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만든 모든 순간을 시간으로 계산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인건비라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노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어야 하는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가기를 택했다면 먹고 사는 것은 누구에게든 보장되어야 한다. 더는 내년 시급이 얼마인지 인상률이 얼마인지를 알고 싶지 않고, 나의 시간에 1만 원을 더 얹어주려는 후보를 찾아 투표하고 싶지도 않다.

200만 원과 600만 원짜리 일의 결과는 물론 다르다. 더 많은 전단을 인쇄하고 더 자주 광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나라는 사람은 늘 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쏟고 고민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후려치지 않아도 되고, 별로 크지도 않은 파이를 가지고 생존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며,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견적서의 0을 다시 썼다 지운다.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