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부에게 아주 신기한 거위 한 마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황금 알 덕분에 농부의 가족은 남보다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농부는 그 귀한 거위를 소중하게 보살피며 정성스레 키웠다. 그런데, 거위가 알을 하나밖에 낳지 못하니 감질이 났던 모양이다. 저렇게 알을 매일 낳으니 배 안에 황금알이 가득하지 않을까? 욕심이 생긴 농부는 결국 거위의 배를 갈랐다. 맙소사! 그 안엔 황금알은커녕 아무런 알도 없었다. 죽었으니 이제부터 거위는 알을 낳지 않게 되었다. 매일 빠짐없이 선물오던 황금알이 없어졌으니 그의 유복한 생활도 끝이 났다. 나중에서야 농부는 비로소 자신의 욕심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일으켰는지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부산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그리고 도시가 산은 물론 탁 트인 해안과 어우러져 있으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놀기 좋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도심지에 위치하는 해수욕장이라 비수기엔 쉽게 나가 바닷바람을 쐴 수 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 해운대는 부산의 관광수입원이다. 이런 지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점 만으로 부산사람들이 해운대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해운대는 부산사람 각자의 아름답거나 슬픈 추억을 담고 있는 삶의 공간이다. 조선비치호텔 앞의 바위 밑은 상준이와 함께 내가 작살로 고기를 잡던 곳이다.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투쟁을 통해 겨우 살려 놓은 송림공원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곳이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백사장은 나와 아내와의 첫 데이트가 어렵게 성사된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파트와 주점으로 빼곡히 채워진 달맞이언덕은 서울 간 친구들이 오면 술 취해 밤새 거닐던 곳이다.

그런데 해운대가 어찌 나와 부산시민만의 공간일까? 연간 수백만 명의 타지역 사람들이 다녀가니 해운대는 실로 대한민국 국민의 추억을 담고 있는 공간이리라. 여기서 열매를 맺은 사랑과 흘린 눈물은 얼마나 될 것이며, 아이와 보낸 따뜻한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해운대는 일부 개인의 사유재가 아니라 이처럼 온 국민이 즐기고, 노래하며 사랑을 이루는 ‘공유재’인 것이다.

시민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받는 해운대가 요즘 위기에 처해 있다. 해운대는 지역 토건업자들과 부산시에 의해 수차례 난자당해 왔다. 그래서 그 아름답던 스카이라인과 해변, 그리고 달맞이언덕은 더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 해안옹벽으로 인해 모래가 유실되어 해운대의 해수욕장 기능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매년 수억 원씩 들여 모래를 채워 넣어야 간신히 해수욕장의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무려 101층 411m 높이의 초대형 랜드마크 타워가 백사장 코앞에 들어섰다. 엘시티다! 이제 해운대는 882세대 아파트 주민의 앞마당이 되어 버렸다. 공유재의 사유화!

온 국민의 공유재인 해운대백사장이 아파트주민의 사유재로 바뀌는 과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과 중앙관료, 부산시공무원 금융권 언론이 엘시티업자 이영복과 결탁한 사건이며, 거기에 대학교수들마저 관련 위원회에 참석해 그 비리를 ‘펜의 힘’으로 뒷받침해 준 초대형 비리사건이다. 돈 있고 힘있는 자들이 강력한 ‘사회자본’을 동원해 시민의 공유지를 아파트 주민의 앞마당으로 바꾼 사건인 것이다.

그 내막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거기에 부산시장님이 살고 계신다. 그것도 두 채나 가지고서 말이다. 이 엘시티와 함께 황금알 낳는 거위도 죽어가고 있다.

며칠 전 시장님의 앞마당을 걸었다. 우아하지 못한 걸음걸이로 매번 아내의 핀잔을 받아 온 처지라 뒤통수가 불편하다. 339ｍ 높이 882세대 아파트 ‘관객’들의 눈을 의식해선지 신경이 더 쓰인다. 시장님도 그 안에서 보고 계시리라.

해운대! 그것은 우리 모두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며 내 자녀들이 앞으로도 사랑과 눈물을 나눌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몇몇 부자들의 앞마당이 아니다. 해운대는 공유재다. 그리고 황금알 낳는 거위이기도 하다. 앞마당의 거위를 시장님이 살려낼 수 있을까?

좋은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