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황망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지난 3일 부산 강서구 대저1동 일본식 가옥들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세 번째로 찾아 나선 길이었는데, 첫 번째 방문 때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두 번째는 그것을 재차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번엔 달랐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너무 달라진, 혀를 찰 정도의 현장을 확인했던 까닭이다. 대저1동에서 현재 일본식 가옥과 건물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거나 역사성 및 장소성을 담고 있는 것은 비료창고, 배 저장고 등까지 합치면 10채 남짓이다. 이 가운데 국가등록문화재는 하나도 없고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등재된 것은 2채뿐이다. 하지만 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된 것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중 하나는 건물 앞에 폐 건축자재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야적장을 방불케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매각 절차를 밟아 이미 집주인이 바뀌었다. 언제 해당 가옥을 허물고 ‘콘크리트 철골조’ 건물을 짓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옛 대저수리조합 사무동 건물은 바로 옆 비료창고와 함께 곧 헐리게 된다. 이에 따라 옛 대저수리조합 사무동에 있던 강서도시재생열린지원센터의 사무실은 근처로 옮겼다. 대저수리조합은 일제식민지시기 ‘풀뿌리 식민 지배자’이던 일본인 농업 이주자들이 낙동강 유역 대저지역 땅을 벼농사 중심으로 개간하고자 관개 등 수리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설립했다. 대저수리조합은 낙동강 하류 물줄기의 유래, 김해평야의 원형과도 맞닿아 있다.
왜 대저지역을 강조하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한국 근·현대사와 근·현대 지역사에서 대저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게 그에 대한 대답이다. 대저지역은 일제가 식량 수탈과 자국 내 인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주도로 진행한 농업 이민 사업의 주대상지 중 하나였다. 낙동강의 잦은 범람 탓에 논 등으로 이용하지 못한 미간지가 많았던 대저지역은 일본인 농업 이주자들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일제의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일본인 이주자들은 당시 조선에 대거 진출해 농장 대지주로 변신하거나 직접 농사를 짓는 자작농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일본인 이주농촌이 곳곳에 형성됐다. 현재 대저1동 일대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 등은 식민지시기 일본인 이주농촌의 흔적이다. 식민지시기 김해평야의 농업 관련 시설로서 가옥, 비료창고, 배 저장고 등이 대저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선 결과다. 이 때문에 대저지역 일본식 가옥 등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일제 수탈의 역사를 기억하는, 재생하는 공간이 된다.
대저지역은 1932년 12월 길이 1060ｍ의 구포다리(낙동교, 낙동장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대저도, 구포 향도(向島), 향도(向島)로 불리던 섬이었다. ‘구포 향도’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하듯 대저는 동낙동강 건너편 구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예전의 구포는 낙동강 하류의 상업·물류 중심지로 정미업과 제분업, 제면업 등 상권이 발달했다. 식민지시기 일본인 이주자들에 의해 대저지역 자연제방 일대에서 재배된 ‘대저 배’는 구포에 집하돼 ‘구포 배’로 불리며 한강 이북지역을 포함한 전국에 유통됐다. 대저는 전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던 주요 배 생산지였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는 대저의 일본식 가옥들 중 시 근대건조물로 등재된 것마저 왜 사라지거나 훼손될 처지로 몰렸을까. 제도상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시 근대건조물 관련 규정을 담은 ‘부산광역시 근대건조물 보호에 관한 조례’에는 ‘소유자 또는 관리자는 해당 근대건조물의 관리에 있어 본질적인 부분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시장은 근대건조물의 보존·관리를 위하여 제7조에 따른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수하거나 수리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으나 마나’이다. 조례 조항의 구속력 역시 떨어진다. 시 근대건조물이란 게 ‘전수조사’와 ‘등재’에 주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초점을 맞춘 등록문화제 제도는 조례가 아니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과 시행규칙) 상에 명시돼 구속력이 있다. 또 일단 등록문화재로 등재되면 유지·관리를 위한 수리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고, 등록문화재와 부속 토지에 대해서는 재산세 50% 경감 등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시 근대건조물의 소관부서가 문화재 관련 업무를 하는 문화체육국 문화유산과가 아니라 도시재생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도시계획실 도시균형재생국 도시재생정책과인 점도 문제다. 문화유산의 ‘보존’보다는 ‘개발’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화유산의 사전적 뜻은 ‘앞 세대의 사람들이 물려준, 후대에 계승되고 상속될 만한 가치를 지닌 문화적 전통’이다. ‘문화적 전통’을 ‘개발’ 위주의 부서가 맡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편집국 부국장, 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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