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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고개를 들어 과묵하고 성실한 달을 보라 /유성환

달이 차고 이움에 따라 삶의 주기 변했던 과거

코로나19 어려움 딛고 달같이 풍만한 삶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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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1-03-03 19:22:1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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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달맞이를 통해 만월을 보신 독자 분들도 있겠지만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도시 거주자 중 일부러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달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9.5일의 태음주기 기간 끊임없이 차고 이우는 그 같은 속성 때문에 달은 인류에게 하루 이상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해주었고 태음주기의 전체 패턴을 파악함으로써 미래라는 새로운 시간을 상정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울러 태음주기는 역법과 절기의 기준이 되면서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농경은 물론, 국가의 중요한 행사들도 태음주기에 맞춰 진행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차고 이울기를 반복하다 지하로 사라졌다 다시 떠오르는 달은 많은 고대문화에서 죽음에 대한 승리, 즉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태음주기에 따라 발생하는 조수간만 현상은 바다를 비롯한 지상의 모든 물을 조절하는 초월적인 존재로 달을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요컨대, 고대인들은 달의 기조력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 지하수가 차고 이슬이 맺히는 현상, 심지어 체액의 증감에 따른 인간의 감정과 기질의 변화까지 조절한다고 생각했고 이와 같은 생각은 중세까지 이어져 파종과 수확은 물론, 각종 종교적 축일과 축제 일정의 결정, 형의 집행과 수술 및 분만 날짜의 결정 등 삶의 구석구석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우주의 기원과 그 작동 원리에 대해 깊이 성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처럼 중요한 천체를 놓쳤을 리 없다. 이집트에서 최고신은 창조주-태양신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긴 했지만 태양신의 위상이나 역할은 비교적 일정했다. 다시 말해, 창조주-태양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명실상부한 신들의 왕이었다.

이에 반해 달신의 속성은 조금 더 복잡했다. 일단 달의 위상 변화에 따라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신은 명계의 신 ‘오시리스’였다. 그리고 달이 상징하는 지상의 생식력과 풍요의 속성을 체화한 신은 ‘민’이라는 신이었다. 아울러 태음주기에 따른 셈법과 역법, 더 나아가 문자와 모든 지식을 관장하는 신은 따오기 머리의 ‘토트’였으며 달의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운 마법적 능력을 표상하는 신은 ‘콘수’라는 어린이 신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달이라는 하나의 천체가 보여주는 그 변화무쌍한 변화에 얼마나 많은 속성과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달과 관련한 명절이나 행사가 많이 있다. 달에 대한 신앙의 흔적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대보름과 관련된 세시풍속으로는 달맞이와 함께 ‘달집 태우기’처럼 달집을 짓고 그것을 불태워 한 해의 액막이를 하는 풍습을 비롯해 80개가 넘는다고 한다. 특히 정월 대보름의 행사는 새로운 봄을 맞는 행사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많은 문화에서 태음주기를 따라 이울고 차기를 반복하는 달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상징했다. 지난해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이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으로 말 그대로 죽음과 같은 시기를 살아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행동이 바로 위험 그 자체가 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례를 찾기 힘든 위기를 경험했다.

그리하여 지난해의 우리가 이우는 달 같은 해였다면 올해의 우리는 역경과 상처를 서서히 회복하는 차오르는 달 같은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게다가 올해는 흰 소의 해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흰색은 달의 색이고 달은 많은 문화권에서 별들을 암소로 거느리는 소로 표상되며 달이 가진 생식력과 풍요를 상징한다. 하늘과 시간의 변화처럼 호랑이와 함께 역병은 물러가고 흰 소와 함께 다시 넉넉한 일상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각종 인공 조명과 영양제, 호르몬제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달이 인간의 인체 리듬에 영향을 준다는 것 역시 벌써 옛말이 되었다. 그러니 달은 이제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들이 자신에게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이 섭섭했는지 달도 우리로부터 매년 3.8㎝씩 멀어진다고 한다. 이런 속도라면 2만6000년마다 1㎞씩 멀어지는 셈인데 앞으로 15억 년 뒤면 달은 지구의 인력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문제는 그래도 인류가 이 지구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달은 언제나 과묵하고 성실하게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번 대보름을 놓친 독자들이여, 다음 보름이 되면 고개를 들어 달에게 올해에 합당한 소망을 한번 고백해볼 일이다.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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