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속 고종은 일본의 만행을 지켜만 보는 ‘정의로운 나라’ 미국에 대해 이렇게 개탄한다. “미국은 정녕 측은지심도 없단 말인가”.

순진하게 느껴지는 대사였다. 국가 간 외교에 측은지심은 명분이 될 수 있을지언정 목적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드라마 속 ‘미국’은 측은지심이 없었지만, 선교사 등 ‘미국인’은 측은지심을 보였다. 정의와 도덕은 개인에게는 목적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구성한 집단에게는 명분일 뿐일 때가 많다.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는 노동권이 높다는 스웨덴에 뿌리를 둔 기업이다. 이케아 스스로도 인권, 환경 존중 기업인 점을 강조한다. 한국에는 2014년 12월 광명에 1호점을 내며 진출한 이후 승승장구 중이다. 코로나19로 소비위축이 극심했던 지난해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33%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부산 기장군에 문을 연 이케아 동부산점 역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매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고객이 몰렸다. 그런데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면서도 매출까지 승승장구 중인 한국 이케아의 근로자들은 오늘도 투쟁 중에 있다.

한국 이케아에서는 매장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인력으로 1인 다역은 당연한 일상이 됐다. 혼자서 계산, 카트 정리, 테이블 관리, 청소, 설거지까지 모두 하다 보니 화장실조차 쉽게 갈 수 없다. 가려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여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설거짓거리를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는 정상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움직인다. 도저히 안되어서 조금 속도를 늦추면 관리자들이 와서 속도를 다시 올려놓는다. 결국 컨베이어 벨트 끝에서 그릇이 쏟아지고 깨지기도 했다.

안전을 위해 보통은 2인 1조로 하는 사다리 작업이나 지게차 작업도 이케아에서는 혼자 해야 한다. 나홀로 사다리 작업을 하다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다. 일이 고되지만 임금은 최저시급 수준인 데다 풀타임 근무도 보장해주지 않다 보니 퇴사도 잦다. 스웨덴 이케아에는 있는 유급 휴게시간과 저녁 및 휴일 가산수당도 한국 이케아에는 없다.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또 다른 스웨덴 기업의 한국법인인 에스케이에프코리아는 사무직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공개된 간부들 전원에 대해 해고 등 중징계와 좌천성 인사발령을 단행했다. 법무법인까지 동원해 노조 위원장을 사문서위조 등 여러 범죄혐의로 고소했다.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직업훈련기관 인증기간 연장 서류에 관행대로 법인의 사용인감을 찍어 제출한 것이 ‘사문서위조’이고, 위조 서류를 제출한 것이 노동부 공무원에 대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라는 것이었다. 평소대로 부서장 결재까지 받아서 지극히 일상적 업무로 처리한 것이었지만 대표이사에게 승인받지 않았으니 위조라는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었다.

당연히 검찰은 모두 무혐의로 처리했지만 위원장은 수 개월간 경찰 수사를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에스케이에프는 노동권이 높은 스웨덴에서도 특히 존경받는 가문인 ‘발렌베리가’의 기업으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및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런 기업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을 파괴한 혐의로 법원에서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까지 받았다.

지금도 이케아코리아는 ‘우리는 노동친화적 기업’이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이들 기업의 정의와 도덕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본국에서 노동친화적이던 기업들이 한국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노동법과 그 집행 수준, 노동환경이 딱 이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노동법을 어겨도 잘 처벌되지 않으니 굳이 준수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혐오하며 교섭의 파트너로 대우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없으니 노동조합을 깔보고 무시한다. 노동법 준수의 감시자가 되어야 할 노동조합이 무시 받으니 해외 지점과 같은 휴게시간은 고사하고 멀쩡한 노동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결국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건 도덕이 아닌 이익이다. 노동 존중을 노동법으로 강제하고, 위반 시 제재의 불이익을 위반을 통한 이익보다 크게 하면 이들은 저절로 본국에서와 같은 노동친화적 기업의 면모를 되찾을 것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