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는 선배 법조인이 있었다. 같이 술자리에 있던 사람이 부축해서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다음날 전화하면 전날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재판에서 술이 문제가 된 사건은 비교적 관대했다고 한다.

지금은 성범죄 사건을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아들만 둔 판사와 딸만 둔 판사의 성범죄에 대한 사실인정 여부에 차이가 난다는 말도 있었다. 이는 판사라 할지라도 판결을 할 때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세계를 벗어나는 게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법관이란 특정 사건에 대한 법리를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뛰어난 전문가이겠지만 피고인이 진짜 그러한 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사실인정과 인정된 사실에 어느 정도의 형벌을 부과하는 게 적정한지는 자신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결정했다고 해도 자신의 경험이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는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듯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면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이 결정을 한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시민의 합의가 법전문가인 판사가 내린 결론보다 합리적이며 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된 범죄사실에 어느 정도의 형을 선고할 것인가도 판사마다 매우 들쭉날쭉하여 형의 불균형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게 되었고 결국 연방양형기준법이란 것을 제정하게 되었다. 연방대법원이 양형기준을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하여 권고적 효력만을 인정했지만 어쨌든 법관의 형의 선고가 개인 간의 편차가 심하고 이를 조정하기 위해 많은 고심과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기도 하다.

재판 절차는 크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유·무죄를 결정하는 사실인정과 인정된 사실에 대한 법의 적용, 그리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을 정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은 위에서 봤듯이 유·무죄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으면 배심재판에서 배심원이 결정하고 법 적용은 법관이 인정된 사실에 해당하는 법을 적용하며 그에 대한 형은 연방양형기준을 참고하여 선고하게 된다. 참고로 양형기준법 시행 후에 미국의 양형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양형기준을 초과해 형이 선고된 경우는 2.3%에 불과하며 대다수 양형기준을 준수하고 일부 예외적인 경우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기준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사실인정부터 양형까지 모두 전적으로 법관의 판단에 맡겼다가 얼마 전부터 법을 제정하여 일정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고 양형도 양형위원회에서 형의 선고 시 참작할 기준을 만들게 되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법관들이 헌법에 규정된 대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해도 개인적인 편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최근 대법원장이 헌법적 책무를 잊지 않고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당연하다. 그러나 법관의 판단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에 비록 세련되지는 못해도 재판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한다면 한 번 쯤 새겨들을 필요도 있다. 대법원장도 덧붙여 사법부가 지난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미사여구의 추상적인 표현으로만 그친다면 별 의미가 없다. 재판에 대한 잘못이었는지, 사법부 내부의 잘못이었는지 어떤 사건에 대한 잘못인지 구체적이지 않으면 사법부가 정말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만 들 뿐이다.

사법부의 독립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사법부가 어떤 것인지, 재판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의 소리가 있다면 재판에 대한 공격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재판의 잘못은 없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헌법에서의 양심은 법관 개인의 소신과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논리와 경험칙’에 입각한 객관적인 양심을 뜻하기 때문이다.

초대 대법원장이신 가인 김병로 선생은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최대의 명예손상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