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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북어보푸라기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0-12-30 19:36:5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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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종갓집 상차림에 자주 올라오는 반찬 가운데 북어보푸라기가 있다. 어지간한 종갓집은 1년에 제사만 열 번 넘게 지낸다. 살림이 아무리 궁핍해도 조상 제사상만큼은 번듯하게 차린다. 자연스레 제사를 지낸 후에는 많은 음식이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가음식에서 가장 발달한 분야가 남은 제사음식의 활용이다. 어느 제사상이건 북어포는 반드시 올린다. 남은 건 ‘국물이나 내겠거니…’하는 건 종가의 태도가 아니다. 제사 때 쓰인 북어포를 모두 모아 숟가락으로 뼈 사이에 있는 마른 살점을 모조리 긁어서 베보자기에 싼다. 그리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방망이로 두드린다. 이렇게 해서 얻은 부스러기를 모아 참기름과 설탕을 넣어 버무린다. 여기에 추가로 소금, 간장, 고춧가루를 각각 더해 색을 낸다. 그럼 소담하면서 색이 고운 삼색 북어보푸라기가 된다. 다 말라 비틀어진 북어 하나도 버리지 않고 번듯한 음식으로 재창조하는 솜씨와 정성이야말로 종가음식의 숨은 가치다.

   
소금, 간장, 고춧가루로 색을 낸 삼색 북어보푸라기.
그런데 북어보푸라기는 밥반찬으로 삼기에는 좀 심심하다. 북어보푸라기의 현대적 쓰임을 고민하다 조선시대 임금의 밥상에 닿았다. 조선의 임금은 초조반, 조반, 낮것상, 석반, 야참 등 하루 다섯 번의 밥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초조반이다. 조반을 먹는 시간은 오전 10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조반까지의 간격이 길다. 그래서 이른 아침의 공복을 해소하기 위해 가벼운 상을 올렸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받는 상이라 ‘자릿조반’이라고도 불렀다. 밥 대신 죽, 미음 등을 올렸다. 이때 반찬으로 나박김치, 동치미 등의 국물김치와 더불어 북어나 암치(말린 민어)로 만든 보푸라기를 곁들였다.

자고로 음식은 그 존재 이유와 쓰임새를 알아야 실마리가 풀린다. 자릿조반의 보푸라기는 죽이나 미음처럼 아주 담백한 음식에 곁들이거나 섞어 먹는 일종의 마른 양념이었다. 이러한 궁중의 방식이 반가로 확산되었고, 반가의 음식이 대물림되어 오늘날 종가음식으로 굳어졌으니 북어보푸라기는 그 전파와 전승이 아주 명확한 음식이다.

   
‘후리카케’라는 일본음식이 있다. 건조한 김, 야채, 멸치, 가다랑어 등을 잘게 다져 밥 위에 뿌려 먹도록 만든 일종의 혼합 조미료다. 이유식, 볶음밥, 주먹밥 등 활용 범위가 다양하고 야채와 해산물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손쉽게 먹일 수 있어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수요가 늘어나니 국내 식품회사에서도 앞다퉈 제품을 출시했다. 적절한 제품명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본어를 제품명으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억지로 제품명을 쥐어짜내긴 했는데 그 결과가 가관이다. 보크라이스, 밥친구, 밥이랑, 뿌리링, 뿌리요 등이다. 급기야 오지랖 넓은 국립국어원이 나섰다. 2013년 ‘후리카케’의 순화어로 ‘맛가루’를 선정했다. 음식의 본질이나 쓰임새에는 관심 없는, 오로지 언어에만 집착하는 학자들이 빚은 참사다. 라면수프를 ‘맛가루’라고 순화하자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다. 북어보푸라기는 보푸라기처럼 잘게 부서진 형태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하지만 그 쓰임새를 보면 ‘후리카케’에 정확하게 대응한다. 용도와 전통이 분명한 보푸라기를 두고 ‘맛가루’라는 뜬금 없는 명칭을 볼 때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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