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7월 6일, 파스퇴르가 일하는 파리의 연구소에 미친개에게 물린 아홉 살 소년이 왔다. 알자스에서 온 조제프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틀 전에 광견에게 심하게 물려 위중한 상태였다. 광견병은 불치의 병이라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먼 길을 달려왔다. 63세의 화학자 파스퇴르는 이미 광견병을 치료하는 백신으로 동물 실험을 끝냈지만 아직 사람에겐 시험하지 않았다. 좀 더 완성도를 높여 안전하게 만들 날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도 아홉 살 때 마을 사람들이 광견병으로 고통받으며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니의 간절한 하소연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의사도 아닌 자신이 섣불리 치료에 나섰다가 일을 그르치면 연구 자체도 좌초될 것이 뻔했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냈다.

파스퇴르는 그날 저녁부터 10일 동안 소년에게 시험 중인 백신을 주사했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고 소년의 상태도 나아졌다. 하지만 광견병의 잠복기는 2개월이나 되기 때문에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일단 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파스퇴르는 약간의 돈, 편지봉투, 우표를 주었다. 이틀마다 상태를 편지로 보고하게 했다. 잠복기가 지나도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광견에게 물리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기적이었고 파스퇴르의 성공을 뜻했다. 파스퇴르는 10월 말에 이 사실을 학회에 보고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파스퇴르는 그들 모두에게 주사를 놓았다. 하지만 치료가 언제나 성공하진 않았다. 너무 늦은, 너무 심한 환자들은 주사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정하게 돌려보내진 않았다. 이들은 실패 사례로 기록되었다.

반대파들은 이런 실패를 물고 늘어졌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치료를 하느냐고 의사들이, 일부 언론이 비난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퇴르는 치료를 계속했고 사례가 늘어날수록 백신 효과는 분명해졌다. 의사들도 손을 쓰지 못하는 끔찍한 광견병은 파스퇴르의 손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파스퇴르는 국가적인 영웅이자 세계적인 미생물학자로 우뚝 섰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언제나 첫 환자를 잊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기니피그가 되어준 초기 접종자들에게 경제적 지원도 하고 연구소에 일자리도 마련해주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군이 파스퇴르 연구소에 들이닥쳤다. 독일군은 연구소 지하에 있는 파스퇴르의 무덤까지 쳐들어갔다. 독일과 프랑스는 미생물학계에서도 오랜 앙숙이었기 때문에 좋은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늙은 수위는 문 열기를 거부했다. 결국 총부리를 들이대어 강제로 문은 열리고, 수위는 파스퇴르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노인의 이름은 조제프, 55년 전에 파스퇴르가 살려낸 바로 그 소년이다. 연구소에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을 겪고 있다. 최근에 고조된 위기감 때문에 백신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정부도 여러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약사들이 선구매 조건으로 면책권을 요구했다 한다. 급히 만든 백신이라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묻지 말라는 말이다. 사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으니 싫으면 말라는 야속한 말로도 들린다.

물론 이런 사태는 처음이니 제조사의 불안한 마음도 이해된다. 만에 하나 터질지도 모르는 줄소송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백신의 선구자 파스퇴르를 생각하면 면목 없는 일이다. 소년의 어머니에게 당신이 원해서 하는 치료이니 아들이 잘못되어도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공 후에도 환자를 끝까지 돌보았다. 소년도 파스퇴르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겼다.

제약회사들은 평소에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한 광고도 많이 한다는데, 이런 위기에 면책을 주장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보다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인다면, 아마 그 회사는 파스퇴르처럼 세계인의 마음에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