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1889년 설립되고 김지태 강석진 양정모 등 기업인이 회장을 역임한 단체는 무엇일까요? 이 단체는 대기업의 발상지이자 수출전진기지로 한국 경제 발전을 견인한 도시에 있습니다. 현재 5900여 개 회원사의 권익을 대변합니다. 90명 가까운 직원이 근무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부산상공회의소입니다. 상공회의소는 1952년 12월 20일 제정된 상공회의소법에 의거해 그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받습니다. 임의단체가 아니고 법정단체라는 뜻입니다. 1889년 7월 19일 부산객주상법회사가 모태인 부산상의는 1953년 10월 31일 공법인을 설립해 법정단체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부산상의는 수출주도형 경공업이 발달한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 한국 경제 발전을 선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나타나게 됩니다. 1980년대까지 국내 수출 실적 1, 2위를 다툰 삼화고무, 합판을 모태로 1970년대 한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한 동명그룹, 세계 최대 신발기업으로 국내 재계 서열 7위까지 오른 국제그룹이 대표적인 부산의 기업입니다.

이 외에도 부산지역은 국내 대기업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락희화학공업사는 LG화학의 전신입니다. 당시 치약의 대명사인 럭키치약을 생산했죠. 국내 최초로 라디오를 생산한 금성사는 오늘의 LG전자로 성장했습니다. LG그룹 창업주 고(故) 연암 구인회 회장은 부산 연지동에 이 두 기업을 각각 설립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설탕 국산화에 성공한 제일제당 역시 부산이 모태입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은 부전동 동천변에 1500여 평 규모의 제일제당 공장을 건립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 아파트와 카페들이 들어섰죠.

부산상의 회장은 이전과 비교해 그 위상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국내 제2 도시의 경제계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대한상의 수석부회장을 겸직합니다. 그런데 최근 제24대 회장 선출을 놓고 지역 상공계가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싸우지 말고 추대하자는 데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럼 누구를 추대해야 하느냐를 놓고는 의견이 갈립니다. 현 허용도 회장이 연임하지 않는 대신 차기 회장을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현 상의 의원들이 차기 회장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일부 회원들이 반발하면서 소송까지 갔습니다. 결국 법원이 허 회장의 추대안이 정관상 문제가 있다며 제지했습니다. 대신 오는 30일까지 후보 추천을 받아 조정 기간을 거친 뒤 한 명을 추대하기로 합의하면 그대로 진행하고, 추대가 안 되면 임시 의원총회를 열어 경선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24대 의원이 구성되면 총회를 열어 인준 과정을 거치기로 했습니다.

전국에 73개의 상의가 있지만, 대부분 별도 회장을 추대하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지난 주 끝난 창원상의 회장 선거 역시 막판까지 2명의 후보가 나왔지만 선거 당일 최재호 무학 회장이 후보를 사퇴하면서 구자천 신성델타테크㈜ 회장이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으로 추대됐습니다. 부산은 추대의 전통을 이어왔지만 2018년 23대 회장을 선출할 때 허용도 태웅 회장과 장인화 동일철강 회장이 사전에 표 대결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편이 갈리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입니다.

부산상의 정관에는 ‘부산상공회의소는 관할 구역의 상공업계를 대표하여 그 권익을 대변하고 회원에게 기술과 정보 등을 제공하여 회원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높임으로써 상공업의 발전을 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습니다. 상위법인 상공회의소법에는 ‘회장은 상공회의소를 대표하고 의사(議事)를 정리하며 회무(會務)를 총괄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회장은 상공업계의 권익을 대변하고 발전을 꾀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차기 부산상의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지역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고,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서 가덕신공항 건설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누군가 상의 회장으로 나서고자 한다면 ‘반구저기(反求諸己)’처럼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 자로편에 ‘진실로 자기 몸을 바르게 하면 정사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苟正其身矣 於從政乎 何有)’고 했습니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몸을 바르게 함(正身)은 사적인 것을 버리고 공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 정당하고 당당한 태도,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 부끄러움을 알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판단력 등을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옛말에 ‘주변에 진실로 자기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을 때 자리에 나서라’는 말도 있습니다. 평소 정신(正身)해 존경을 받는 기업인이면 이번 제24대 상의 회장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기업이 크고 작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편집국 부국장 nam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