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 요즘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뜨거운 단어다. 법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또는 유스티티아; Justitia)’가 양손에 들고 있는 칼과 천칭은 법 집행의 엄정함과 공평함을 뜻한다. 법이 집행될 때는 그 대상이 있고, 그들은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고 응당한 죗값을 치르는 경우들이다. 그래서인지 법은 ‘불가근불가원’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법 준수 여부에 대한 자의적 선택은 차치하고, 누구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상식의 선은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의 효과적인 교육 때문인지, 법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음으로부터 오는 제재에 대한 심리적 일차반응이 그 이유일 것이다.

법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다 보니, 조금 다른 관점의 생각도 든다. 우리가 법이라는 것을 대할 때, 규범을 정하고 그것을 강제하는 도구이거나, 포괄적으로 법치주의 체제 그 자체라는 인식이 너무 깊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법적으로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때에 따라서 그 법 때문에 불편해지는 상황도 얼마든지 있다. 억울하지 않은가. 대부분 관련법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데, 사방에 정보가 흘러넘치는 지금에 이해의 부족이라니.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차질 없는 법 집행을 위해서는 제정된 법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효과적인 보완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올 1월 1일부터 친환경선박법이 시행되었다. 정확한 명칭은 ‘환경친화적 선박의 개발·보급 촉진을 위한 친환경선박법’으로, 시행령의 형태다. 친환경 선박의 개발과 보급촉진을 위한 계획 수립 및 변경, 친환경 선박의 구매 지원에 대한 기준과 방법 등이 주요 골자다. 국제해사규정에 의해 관리를 받는 외항화물선 외에도 친환경선박 전환 대상을 내항선, 여객선, 어선, 예인선 등으로 확대했다. 친환경선박법을 따르지 않고, 친환경적 선박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선주가 잡혀가거나 하는 법적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박을 이용한 경제활동에는 제한이 있다. 실상 선박을 통한 경제활동이란 것도 외형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크게 연관 있어 보이지는 않기에, 친환경선박법은 일반인의 관심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보의 이해나 공개 수준도 얕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해양수산부가 2030년까지 관공선 140척을 친환경선박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친환경선박 건조가 검토되고 있다. 항만을 청소하는 선박인 청항선 한 척을 친환경 수소연료전지추진선박으로 새롭게 건조하는 경우 발생하는 일련의 상황들을 예상해 보자. 우선, 엔진을 수소연료전지와 전기모터로 대체하고, 벙커C유 연료탱크는 수소저장탱크로 바꾸어야 하며, 항만에는 수소를 주입할 연료공급시설을 만들고, 연료전지 팩과 연료통을 배치하는 선체구조를 새로 설계한다. 다음 단계로, 수소연료전지를 확보하고, 수소연료탱크를 제작하며, 새로운 설계대로 선박을 건조할 조선소를 찾아 발주하고, 선박의 운항 인증을 받는다.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추진기를 작동할 선원 교육용 교육기관이 만들어지고, 연료전지 성능이나 연료탱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들이 많아지며,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사업구조 재편에 나선다.

다양한 분야의 복잡한 과정들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규모도 크다. 이 과정을 거쳐 시장의 기능을 가진 규모를 갖추려면 대량생산 대량공급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140척의 관공선을 먼저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2022년이 되면 동남권의 상업용 액체수소 하루 생산량이 40톤 정도로 국내 최대량을 예상한다. 수소자동차 1만 대가 하루에 소모하는 수소가 5톤 이하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양의 수소가 에너지로 공급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공급 방법에 대한 각론들은 보완되어야겠지만, 여러 종류의 친환경 에너지 중에서 공급의 수월성 차원에서 본다면 수소연료선박이 가장 효과적인 친환경선박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연료전지부터 수소공급용 설비까지, 헤아릴 수 없는 설비와 제품들이 시장에 나오게 되고, 시장을 선점하고 유지할 인력들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다루게 된다. 경제활동의 주축 세대는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고, 배움 단계에 있는 청년 들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와 기술 축적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이들 모두는 선박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연관된 보편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친환경선박법 시행의 의미는, 글로벌 규제 대상인 온실가스, 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물질을 줄이면서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 해운과 조선해양 기자재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련 제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가겠다는 것이다. 해양산업을 좌우할 새로운 좌표가 법의 형태로 등장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산업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는 법 시행의 의미와 역할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왜곡된 정보나 악의적인 정보 가공은 법의 시행에서 장애물로 작용한다. 정보의 취합과 공평한 공개가 중요한 시점이며,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