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소설가 김모 씨의 경험담이다. 1970년대 후반 산골 소년이던 그는 자전거로 등교하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초등학교까지 줄잡아 십리 길. 자전거로는 20분이면 충분했지만, 걸어야 했던 그는 1시간은 일찍 출발해야 했다. 교문을 향해 뛰듯이 걷는데 ‘자전거 탄’ 친구들이 훌쩍 추월해 가는 바람에 황망해 하던 날도 많았다.

자전거 탈 줄도 모르던 그는 3학년 어느 봄날 마침내 사고를 친다. 학교 자전거 보관소에서 무작정 한 대를 끌어내 운동장을 질주하다가 담장을 들이받고 쓰러져 버린 것. 무릎에 피까지 흘리며 자전거를 끌고 보관소로 갔지만, 그는 또 다른 시련에 맞닥뜨렸다. 그것은 자전거 주인인 어느 6학년 형님의 주먹세례였다. “이 도둑놈!” 외마디 욕설이 들리는가 싶더니 눈 앞에 별 수십 개가 떴다가 사라졌다. 기절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는 김 작가는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렇게 맞지 않았다면 이후에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남의 물건에 손댔을지 모르고, 어쩌면 지금 ‘도둑놈’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어.”

다행히 ‘도둑놈’ 대신 소설가로 자라난 김 작가는 이 이야기로 작품 구상을 하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미 ‘자전거 도둑’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수두룩했다. 박완서, 김소진 같은 선배들의 단편을 능가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을 보고는 그냥 자기 이야기는 추억 속에 간직만 하기로 했다. 굳이 김 작가의 경험담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전거 도둑’이라는 말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들춰내곤 한다. 자전거의 아날로그적 감성도 한몫 했을 게다.

지난 12일 출소한 희대의 성폭행범 조두순(68)의 18차례 범죄 가운데 첫 번째가 ‘자전거 절도’였다는 사실을 접하면 이런 감상은 깨지고 만다. 그는 18세 때 자전거를 훔쳤다가 체포됐지만 초범에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보호자 감호 처분’을 받았다. 이른바 ‘법의 관용’이었다. 하지만 감호는 되지 않았고, 그는 희대의 흉악범이 됐다. 그의 출소를 앞두고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지난 2005년 이중처벌 금지 위반 등의 이유로 폐지된 ‘보호감호 처분’ 부활 주장까지 나왔다. 50년 전 ‘보호자 감호 처분’이라는 법의 관용을 받았던 소년이 50년 뒤 흉악범이 되어 ‘보호감호 처분’ 부활 주장의 명분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만약 소년 조두순에게 관용 대신 따끔한 처벌이 내려졌다면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산골 초등학교의 ‘자전거 도둑’ 김 군에게 주먹 세례를 날렸던 그 6학년 형처럼 말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