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안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원전 소재지가 아닌 세종이나 대전으로 이전하려던 정부 계획이 사실은 청와대 지시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이 관련 기관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라며 어제 이같이 밝혔다. 올초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을 추진하면서 해당 부처에 이 같은 지시가 내려갔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원안위가 원자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도시로 옮긴다는 소식에 지역에서는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정부의 균형발전 의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을 위해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기회만 있으면 약속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의가 무엇인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드는 정황이 하나 둘이 아니다. 몇달전 여당은 행정수도완성TF의 중간보고회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자리에 금융특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아 지역민을 아연케 했다. 서울 금융특구 확대 발상이 행정수도이전 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뿐인가. 연방제에 버금가는 재정분권을 실현하겠다는 공약 역시 갈 길이 멀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말을 뒤집은 공공기관 2차 이전 문제는 더이상 논할 가치조차 없다. 이번 원안위의 세종시 이전 추진 역시 지역민에 대한 배려는 없었던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동안 원전 밀집지의 여론 수렴 한번 없었으니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부는 중앙부처와의 정책 협의 편의를 원안위 이전의 이유로 댄다. 그런 식이면 모든 정부 부처 산하 기관들이 세종시에 모여야 마땅할 것이다. 원안위는 원전 안전 확보와 방사능 방재가 그 설립 목적이다. 원자력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건 현장이다. 원안위 역시 현장의 대응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야 할 기관인 것이다. 원안위는 고리원전 1호기 해체의 총괄 기관이기도 하다. 고리원전 인근에 설립될 원전해체연구소 등 관련 기관과의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기적인 협조 체제가 필수다. 신속한 원전사고 대응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전 정책은 관련 기관이 클러스터를 이뤄야 효율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지역 이전을 제일 처음 주장한 것이 부산이다.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은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원전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런 곳에 하나 더 줘도 부족한데 당연히 옮겨야 할 기관까지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건 말이 안된다. 원안위가 세종이나 대전으로 간다면 서울에 그냥 둬도 된다는 말이나 같다. 부산 기장군 울산 경주 등 원전 도시에서 인센티브를 걸고 유치에 나선 마당이다. 청와대나 정부가 지역민의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원안위 직원들이 아니라 이곳 주민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