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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정명(正名) 못한 정치가 부른 국가 위기 /이경식

검찰총장 직무정지명령…“개혁 일환” 주장하지만 “실상은 개악” 비판 무성

대통령은 묵묵부답 여전…국민 가치혼란만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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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라고 했던가. 김광균 시인은 이 시에 ‘추일서정(秋日抒情)’이란 제목을 붙였지만, 시가 발표된 1940년 일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서사적 상념이 짙게 서려 있다. 무대를 2020년 만추의 한국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낙엽’은 ‘말(이름)’이란 단어로 대체되어야 할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라 할 만큼 말의 가치하락이 심각해서다. 가치가 너무 떨어져 아예 ‘말’과 ‘뜻(실상)’이 어긋나기도 한다.

‘공유경제’란 개념을 한번 보자. 물건을 나눠 쓰듯, 공생하는 경제라는 뜻이다. 그 기반은 사람과 사람을 경제적으로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비대면 거래가 대세로 자리잡아 가는 코로나19 시대의 대표적인 플랫폼은 배달앱이다. 배달앱을 설치한 플랫폼 업체, 배달앱을 매개로 거래하는 소비자와 업소, 배달원이 공유경제의 주체들이다. 이들은 과연 공생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먼저 배달원을 보자. 인공지능(AI)으로 진화한 배달앱은 지형의 높낮이와 굴곡을 감안하지 않고 지도상 직선거리만 따져 배달지시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배달시간은 지시시간보다 30%가량 더 걸려 소비자의 불만을 사기 일쑤다. 소비자 불만이 쌓이면 해당 배달원은 도태된다. 배달원은 사실상 노동자이나, 사고가 나도 보상을 못 받는다. 법상 개인사업자(사장)로 분류되어서다.

업소의 처지 역시 매한가지다. 카드 수수료와 배달앱 이용료는 물론, 소비자와 플랫폼 업체가 공동부담하는 배달비까지 업소가 떠안는다. “배달앱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가게를 노출시켜 주겠다”는 플랫폼 업체의 유인에 순응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업소가 부담하는 온라인 거래비용이 매출액의 30%에 달해 뼈 빠지게 일해도 수입은 변변찮다. 그렇게 장사하다 빚이 불어나 사장에서 배달원으로 추락하는 이가 적잖다.

그런 배달앱을 공유경제 내지 혁신이라 한다. 또 배달앱 AI를 4차 산업혁명시대의 총아라 한다. 배달원과 업소는 굶주리고, 플랫폼 업체만 배를 불리는 착취구조가 어찌 공유경제이고 혁신인가. 언어의 혼란은 삶의 위기를 부른다. 예부터 말(이름)과 뜻(실상)이 일치하는 명실상부(名實相符)를 으뜸 가치로 삼은 연유다. 공유경제는 명실상부가 아닌 명실상충(相衝)일 뿐이다. 이게 우리의 미래라면 끔찍하다.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여서다.

경제의 이런 명실상충은 정치에서 기인한다. 공자는 “정치를 할 경우, 무슨 일부터 하시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정명)”이라고 답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고,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면 정사(政事)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정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예악(禮樂)이 베풀어지지 못하고, 예악이 베풀어지지 못하면 형벌(刑罰)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고,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면 백성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는 까닭에서다. 정명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정치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요즘 명실상충의 극치를 본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명령이 그 표본이다. 검찰총장의 임기(2년)를 법으로 정한 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직 임기가 8개월이나 남은 윤 총장을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직무에서 배제했으니, 법치에 반하는 문제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인데, 추 장관의 행위는 정치적 중립 훼손이다. 검찰개혁을 외치면서 되레 개악 우려를 낳으니, 상충도 이런 상충이 있을까 싶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조국 일가와 유재수 비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원전 1호기 평가 조작 의혹 등 윤 총장의 정권 비리 수사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다. 윤 총장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수사를 지휘할 땐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며 총장으로 임명하더니, 막상 소신껏 수사하자 표변한 것이 그 정황이다. 인사 수사지휘 감찰 등을 통해 윤 총장 측근들을 요직에서 몰아낸 데 이어 윤 총장의 직무까지 정지시켜 버렸다. 과거 독재정권도 하지 않았던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이를 검찰개혁이라 한다.

나치의 언어 왜곡을 연상케 한다. 나치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최종해결책’ ‘특별취급’ 등 용어로 미화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배경이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악행을 저지른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보여준 ‘악의 평범성’은 이런 언어 왜곡에 따른 정신적 마비가 그 기반이 됐다는 의미다. 뜻을 거스르는 말이 낙엽처럼 떨어진다. 말의 가치하락이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를 능가한다. 하지만 ‘명실상충 정치’의 정점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국민은 어찌 해야 하나.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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