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김용석 칼럼] 정치적이기엔 너무도 문명적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11-26 19:43:11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동남권 관문공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6월 지방선거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이슈가 된 것은 전적으로 여권의 정치적 셈법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총체적 이슈였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이 나지 않는 한 계속될 논쟁거리다. 문명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자그마치 2년 반 전에 내가 국제신문 바로 이 지면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이다. 과거의 창고에 있어야 할 글이 마치 최신 이슈를 다루는 듯한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 우울하기까지 하다. 당시 제7회 전국지방선거 이후 부울경 단체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동남권공항 문제를 논의할 때도 정치적 꿍꿍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선거를 앞두고 있던 때가 아니라 선거 직후였음에도 그랬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를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가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 되었다.

정치적 셈법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비판 내지 비난은 언제나 집요한 터라, 당시 나는 이 문제에 간접화법으로 좀 부드럽게 접근하고자 했다. ‘그러지 마시라’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꿈 이야기를 했다. ‘한여름의 몽상’이란 엉뚱한 칼럼 제목을 내세우면서까지 신공항 문제가 ‘문명적 이슈’임을 설득해보고자 했다. 글이 신통치 못했음은 자인하지만, 공항 건설의 문제를 정치적 셈법만으로는 볼 수 없으며 다양한 문명적 차원에서 볼 때 유의미할 수 있다는 입장은 지금도 견지하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신공항에 관한 논의는 2003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부산 상공인들과의 간담회에서 피력한 의견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선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 직후에 논의 되었던 것이다. 신공항 건설은 여러 관점에서 그 타당성이 인정되었는데, 무엇보다도 국토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곧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정책적 고려’였던 것이다. 이 정책적 제안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각 정치권의 정략에 휘둘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아직까지도 신공항 문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반복적이고 따라서 지루하며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일이다.

문명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그 반대일 것이다. 한 나라의 정책 가운데서 공공건설은 곧 문명적인 것이다. 이는 고대 문명에서부터 우리가 확인해오던 것이며 역사적 교훈으로 배워온 것이다. 로마는 드넓은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못된 짓을 많이 한 제국이었다. 그럼에도 로마인들의 행적이 조금이나마 용서되고 지속적인 성찰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에 남을 공공건설을 했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도시(civitas)와 시민(civis)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문명(civilization)이란 말에 충실하게 그들은 시민의 삶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길을 닦았다. 길이야말로 문명화의 핵심 매체였던 것이다.

이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는 하늘길이 전 세계의 도시들을 연결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그렇게 해왔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것이지만 하늘길을 연결하는 거점인 공항은 하나의 도시이다. 도시에 공항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공항이 생김으로써 특별한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별난 도시 주위에 있는 기존 도시들도 또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말부터 분명해졌다.

21세기 초에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곳의 ‘상주 작가’로 초청되었다. 그가 공항에 머물며 그려낸 것은 다름 아닌 도시의 이야기였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여행자들과 공항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공항의 삶을 이룬다. 그곳엔 차가운 첨단 기술 제품의 활용이 일상화한 속에서도 인간적 일상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 문명의 모든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는 도시와 같은 장소, 그것이 드 보통이 그린 공항이었다.

그는 곧 하늘로 올라갈 비행기의 출발 시간을 알리는 대형 스크린처럼 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곳은 없다고 했다. 그 스크린은 이 세상 어디로든 ‘떠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지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드 보통은 스크린의 반만 보았다. 공항의 스크린은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지 또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귀환의 정서’를 가진 동물이다. 돌아오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터미널’에서 공항은 ‘기다리는’ 장소임을 잔잔히 보여준다. 여인이 묻는다. “당신은 뭔가 기다린다고 했나요?” 감성의 연줄을 느낀 남자가 답한다. “맞아요, 우리 모두는 기다리고 있어요.” 공항에선 누구든 무사히 떠날 비행기와 무사히 만날 사람을 기다린다. 아니 무사함 그 자체를 기다린다.

공항이 일반 도시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떠나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일이 삶의 전면에 촉각처럼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 특별한 도시에선 안전이 명시적이고도 최우선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안전의 과제는 우리를 공항 입지 선정의 구체적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개인적으로도 김해공항을 수백 회 이용하면서 지형과 안개로 비행기 이착륙 때 불안했던 경험이 적지 않았다. 김해공항 확장안이야말로 전적으로 정치적 셈법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지난번 칼럼에서 의사결정 속도의 문제도 거론했다. 여기서 속도란 ‘빨리빨리’가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제프 베조스의 말을 인용하며, 완벽한 결정은 없으므로 오히려 늦는 것이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도 했다. 곧 ‘불확실성의 만성화’가 가져올 피해를 지적했다.

여당은 신공항 이슈가 선거용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최종 결정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매번 기회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고 매번 결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민감한 ‘돈 선거’ 꺼내…야당 덮친 이언주 변수
  2. 2주목 이 기업의 기'업' <3> 사회적 협동조합 ‘이유’
  3. 3해피-업 희망 프로젝트 <50> ADHD 이준호 군
  4. 4‘스포테인먼트’ 준비하는 신세계…마냥 부러운 ‘구도’ 부산
  5. 5자이언츠 ‘출퇴근 스프링캠프’ 취소
  6. 6체육단체장으로부터 듣는다 <2> 부산볼링협회 송연익 회장
  7. 7롯데칠성…77년 전통의 맛, 실속 있게 담은 청주
  8. 8연금 복권 720 제 39회
  9. 9“부산시정 초보운전자에 못 맡겨”
  10. 10양산대교 재가설 사업 내달 첫삽
  1. 1민감한 ‘돈 선거’ 꺼내…야당 덮친 이언주 변수
  2. 2“부산시정 초보운전자에 못 맡겨”
  3. 3“제 비전은요”…야당 후보 6명의 부산 바꾸는 약속
  4. 4여야 계속되는 성인지 감수성 공방
  5. 5기장군의회 절반이 무소속 ‘기현상’
  6. 6정 총리, 담뱃값 인상 논란 선 그어
  7. 7“이언주·박형준 싸움 도 넘어…검증 통해 한 명 자격 박탈을”
  8. 8여야 앞다퉈 부산행…불붙은 쟁탈전
  9. 9김영춘 1차 경선 과반 얻어도 안심 못해
  10. 10김종인 수습에도…주호영 또 신공항 딴지
  1. 1주목 이 기업의 기'업' <3> 사회적 협동조합 ‘이유’
  2. 2롯데칠성…77년 전통의 맛, 실속 있게 담은 청주
  3. 3연금 복권 720 제 39회
  4. 4한국해양진흥공사, 해운사 장기화물운송계약 보증상품 출시
  5. 5‘반짝 호황’ HMM(옛 현대상선) 매각설…조기 민영화 닻 오를까
  6. 6“물류 역군 선원 코로나 백신 최우선 접종해달라”
  7. 7CJ제일제당…명절 한상차림도 간편식으로 즐기세요
  8. 8SPC삼립…찹쌀·가래떡부터 한과까지 19종 세트
  9. 9주가지수- 2021년 1월 28일
  10. 10선박 안전 도우미 ‘바다 내비게이션’ 30일 세계 첫 도입
  1. 1해피-업 희망 프로젝트 <50> ADHD 이준호 군
  2. 2양산대교 재가설 사업 내달 첫삽
  3. 3진주 5인 이상 모임 위반 29명에 과태료
  4. 4오페라 ‘허왕후’ 고품격·지역배려 실험
  5. 5대우조선 “협력사와 상생”, 납품대금 440억 조기 지급
  6. 6오늘의 날씨- 2021년 1월 29일
  7. 7서부산의료원 예타 면제 확정…2026년 준공
  8. 828일 태풍급 강풍…부울경 29일 영하로 ‘뚝’
  9. 9[기자수첩] 서장 관사 내 수상한 돈·황금 출처 제대로 밝혀라 /이준영
  10. 10800억 분양사기 ‘조은’ 대표 징역 20년
  1. 1자이언츠 ‘출퇴근 스프링캠프’ 취소
  2. 2‘스포테인먼트’ 준비하는 신세계…마냥 부러운 ‘구도’ 부산
  3. 3체육단체장으로부터 듣는다 <2> 부산볼링협회 송연익 회장
  4. 4조윤섭 태양금속 회장, 부산빙상연맹 회장 당선
  5. 5황희찬, 손흥민과 EPL 더비 기대
  6. 6롯데 루키 나승엽 1군 스프링캠프 포함 눈길
  7. 7체육단체장으로부터 듣는다 <1> 부산시체육회 장인화 회장
  8. 8김시우 PGA 시즌 2연승 도전
  9. 9류현진 든든한 내야 우군 얻었다
  10. 10kt 2연패…공동 5위로 밀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진보당 노정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국민의힘 이언주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융합의 시대’를 진정으로 지향하려면
축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
기고 [전체보기]
장보고의 꿈과 가덕신공항 /허문구
코로나 시대 부산교육의 진화 /김석준
기자수첩 [전체보기]
서장 관사 내 수상한 돈·황금 출처 제대로 밝혀라 /이준영
문재인 대통령 ‘123분 신년회견’에 지역은 없었다 /정유선
김석환 칼럼 [전체보기]
‘능력주의’와 ‘예타만능’이라는 거짓말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해 뜨는 아침, 겨울 산의 속살을 보라
정치적이기엔 너무도 문명적인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관현맹인과 여악의 전통
동래부동헌에 풍악이 울리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성과급 희비
페리의 비핵화 당부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목포 ‘중깐’의 딜레마
불로초 감귤
사설 [전체보기]
백신 접종 시행 계획 발표, 디테일에 성패 달렸다
정지작업 끝낸 서부산의료원 2026년 개원 차질 없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공유경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원격의료 도입의 조건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비핵평화, 중단없이 가야 할 길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되나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이홍 칼럼 [전체보기]
카리스마에 대한 오해
독성 리더십
장병윤 칼럼 [전체보기]
알바트로스, 오 알바트로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영남권 메가시티로 가는 길
서울에서 멀어지면 불안한 나라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불멸의 연인
연말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겨울나기
메리 크리스마스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 코로나 병상 부족 현실화…생활치료센터 설치 힘 모아야 /고광욱
우리의 희생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빈센트 커트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홍도의 ‘논을 가는 소’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