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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11월을 재탄생의 달로 삼는다면 /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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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26 19:50:03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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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의 민둥산에 올랐다가 내친김에 혼자 아리바우길을 걸었다. 강릉의 경포대 해변까지 종주할 요량으로. 걸으면서 보니 산간지방이라 벌써 낙엽은 거의 다 졌고, 헐벗은 나무엔 바싹 마른 잎 몇 장씩만 달랑달랑 붙어있었다. 저들도 좀 더 추워지면 곧장 떨어지겠지. 며칠 뒤면 올해의 달력도 한 장만 남는 한겨울에 접어드는데.

이런 겨울 문턱에서 20㎏ 배낭을 지고 1300m에 이르는 노추산을 넘어, 130㎞가 넘는 길을 엿새 동안이나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보노라니 새삼스럽다. 현재의 몸 상태론 심폐 지구력에 문제없고, 좀 지치긴 해도 다리나 무릎은 걸어온 만큼의 거리를 더 걸어도 될 성싶으므로. 지리산이야 설악산이야 국내의 웬만히 높은 산은 이미 다 올라봤던 지금에서, 예전의 나와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라. 하여 그런 계기가 되었던 11월을 나는 새로 태어난 달로 삼는다.

2002년 이맘때다. 늦가을 정취라도 느껴보자는 심정으로 해운대에 있는 장산에 올랐다. 당시엔 나도 담배 피우고 술 마시던 시절이어서, 주점엔 자주 갔어도 산은 정말이지 1년에 한두 번 오르는 정도였다. 산마루에 올라 담배 피우려고 보니 이런, 담배가 고작 한 개비만 들어있지 않은가. 배낭을 쌀 땐 가게 들러 담배 한 갑 사서 올라가야지 생각해놓곤, 막상 배낭을 둘러메곤 그냥 올라와 버린 거였다. 담배를 피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담배는 떨어질 참인데 곧바로 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 불안, 도저히 표현하기 어렵다.

헉, 이를 어쩌나. 한 개비를 여기서 지금 피워버리고 정상까지 참고 가느냐. 아니면 좀 참았다가 정상에 가서 피우느냐. 담배를 피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거의 한 시간마다 담배를 물었으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꾹 참고 정상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산 위에서 빨아당기는 담배 한 모금이 얼마나 달콤할 때였는가. 차라리 한 개비라도 없었으면 되레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흡연하고픈 욕구를 견디느니, 그 지점에서 아니면 어느 정도 가다가 담배 사러 하산해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지 않고 아예 분질러 버렸다. 그리곤 바로 일어나 정상으로 향했다. 거기서부터 정상까지 가는 길이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가는 돛단배처럼, 얼마나 불안하고 어질어질했는지 어휴. 하산한 후 흡연 대신으로, 볶은 땅콩을 한 봉지 사서 먹으며 그 자리서 결심했댔다. 담배를 끊기로. 동시에 술도 끊기로. 담배를 끊으려면 당분간은 금주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겨. 그날 단번에 끊은 술·담배 덕분으로 이렇듯 종주 산행해도 무리 없을 정도의 몸이 만들어졌다.

11월을 북미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지. 낙엽이 져 나무가 헐벗어도, 동물들이 겨울잠 자러 눈앞에서 비록 사라지더라도 실제론 사라진 것이 아니란 뜻이리라. 한데도 우리는 11월을 그저 지나가는 달로,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될돌아볼 일이다. 예전의 나도 그랬지만, 11월을 어중간한 달로 생각하여 흘려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12월은 한 해의 끝자락이라 마무리 짓는 달로, 1월은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중요하게 여기면서 말이지.

하지만 내 경험상, 11월에 다음 한 해를 준비하지 않으면 새해가 와도 어영부영 넘어가기 일쑤일 테다. 그도 그럴 것이 11월이 지나면 곧장 송년회다 뭐다 하며 눈 깜짝할 새 한 해가 지나가 버리고, 새해 되어 신년계획 세운다고 야단들 하지만 설날 지나고 보면 새해도 몇 장의 달력이 후딱 넘어가 버리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11월의 숫자 형상 그대로 ‘두 다리로 꿋꿋이 서는 달’로 삼는 것도 괜찮지 싶다.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잊을 건 잊는 한편으로, 인디언 말대로 다 사라진 건 아니므로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달로. 말하자면 홀로서기 하기에 가장 알맞은 달로 만들어 보는 거다. 생각을 깊게 하고 명년 계획을 세우기에 이만큼 차분한 달도 없잖은가. 더구나 올핸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어려움이 많았던 데다, 언제 끝날지 모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형편이니만큼 더더욱.

중요한 건 ‘홀로서기’를 띄어 쓴 ‘홀로 서기’로 잘못 이해하여 인간관계까지 거리 두기를 하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띄어 쓴 ‘홀로 서기’는 ‘제 혼자서만’의 뜻이나, 진정한 ‘홀로서기’는 다른 사람에게 얽매이거나 다른 무엇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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