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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내버려진 존재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한성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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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25 19:38:2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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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존엄한가?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이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겠지만, 다른 이는 도덕적 당위로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고대, 근대, 현대로 나눠보자. 지금과 비교할 수 없지만 고대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종교나 관습법으로 나름 고려된 듯하다. ‘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인데 어찌 소나 말처럼 취급했겠나? 하지만 인간은 근대사회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게 된다. 1791년 라파예트가 기초한 ‘프랑스 인권선언’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인류 최초의 선언문이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 근대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이처럼 법으로 보호받는다. 특히 법은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존엄성을 지켜준다.

현대사회는 노동제도와 시회복지제도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준다. 예컨대, 독일은 스스로를 ‘사회적’ 법치국가로 부른다. 독일처럼 선진국만 그렇지도 않다. 실제는 여전히 미흡하지만 우리 헌법도 사회정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 제34조 2항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이처럼 존엄성에 관한 역사는 길고, 그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실로 굳건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모든 인간 곧, ‘만민’이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아왔는지 우린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은 고대 그리스로마사회를 연구하는 중 특이한 인간의 유형을 발견했다. 곧, 공동체의 중대한 규범을 위반한 죄수의 유형인데, 그가 받은 형벌의 내용이 이해 불가할 정도로 낯설었던 것이다.

그 특징은 이랬다. 첫째, 어디서든 누구나 이 죄수를 살해할 수 있다. 이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보통시민의 경우 살해되기 전 재판이나 사형제도와 같은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지만 이 죄수에겐 그 절차가 생략된다. 더욱이 군주든 평민이든 살해자의 지위는 아무 상관없다. 또, 살해해도 그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둘째, 함부로 죽여도 되는 존재이긴 하지만 이 죄수는 희생제의물로 신에게 봉헌될 수 없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고대인들이 양과 염소를 제사의 희생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잘 안다. ‘속죄양’이 대표적 사례다. 속죄양은 순결하고 흠이 없어야 한다. 아무 죽음이나 제물로 바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죄수는 이런 제의의 희생물로 활용될 수 없다. 왜 그런가?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죄수는 제사에 올릴 정도로 순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맘대로 죽여도 좋지만 그 주검을 재활용(!)하지 말라! 차라리 짐승의 밥이 되거나 썩도록 들판에 내다 버려라. 조르주 아감벤은 이런 죄수가 ‘호모사케르’(Homo Sacer)로 불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모사케르는 절차 없이 아무나 죽여도 되지만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이다. 그는 인간의 법과 신의 법 모두로부터 배제된 생명이다. 그는 결코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는 공동체구성원의 박해와 조리돌림, 무자비함, 심지어 살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살아있지만 실은 죽은 생명이다. 그의 죽음은 소리 없이 버려진다. 그리고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다. 공동체 안에서 가장 존엄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호모사케르다.

호모사케르는 중세시대에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광야로 추방된 이 죄수는 평생 늑대머리를 뒤집어쓴 채 살해를 피해 다니는 형벌을 받았다. 근대사회가 되면 ‘죄없는’ 호모사케르가 생긴다. 독일 나치 치하에서 유태인이 홀로코스트의 호모사케르라면 최근 아프리카난민들은 유럽대륙의 호모사케르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호모사케르’가 존재한다. 노동자 중 33%를 차지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다. 호모사케르 중의 호모사케르도 있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깔려 죽고, 용광로에 빠져 죽고, 플랫폼에서 과로사로 내 버려진 사람들이다. 죽임을 위해 특별한 절차가 필요 없고,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어야 한다. 만민이 존엄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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