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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존의 틀:‘방충망’의 지혜 /유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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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22 19:21:0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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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밤, 아버지는 덥다고 아들에게 창문을 열라 한다. 어머니는 모기 들어온다고 닫으라 한다. 문을 열자니 모기에 시달려서, 닫자니 더위로 밤잠을 설칠 것 같고, 누구의 말을 따르든 잠 못 들기는 매한가지다. 아버지를 추종하는 ‘열자파’와 어머니를 추종하는 ‘닫자파’ 간에 언쟁이 일어나고 가족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이러면 더위를 피하고 모기 안 물리는 방법을 찾으려는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신념 속에서 ‘열자’와 ‘닫자’가 목적이 되는 진영싸움으로 상황이 변한다. 이때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삶은 나아지지 않고 가족 구성원 간에 반목과 갈등이 지속될 텐데. 이런 갈등을 끝내는 방안은 없을까?

우리의 직관은 ‘열자’와 ‘닫자’로 이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불행하게도 이 둘은 서로 배타적 관계이므로 상존할 수 없다. 즉 창문 여닫이 방법으론 우리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더위 피하기’와 ‘모기 막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사고틀에서는 승자의 삶을 위해서 패자의 희생쯤은 당연하게 용인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승자의 삶이 더 나아진 것도 아닌데. 이제 창문을 열어버리자. 그러면 일단 ‘더위 피하기’가 해결되고 그다음 ‘모기 막기’ 문제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방충망을 찾아낼 수 있다. 방충망이 ‘창조’되어 갈등 해소과정을 살펴보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우리 사회가 공존의 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할 만큼 깊은 사유가 있어야 하고, 상당한 시간과 비용(과정 중 발생한 실패도 포함)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원래 목적에 합당한 ‘방충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행역량이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0년 22살 청년, 전태일이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안고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그의 외침 이후 50년,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1인당 GDP 3만 달러로 대표되는 경제지표 뿐만 아니라, 교육수준, 문맹률, 평균수명과 문화활동 등 인간개발지수와 문화지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송파 세모녀 처럼 생활고로 자살하고, 탈북민 모자처럼 굶어 죽고, 인천의 초등생 형제처럼 돌보는 부모없이 생활하다 화재로 사망하는 등 90만 명 이상의 극빈자가 생존의 경계에서 살고 있다. 산업재해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최근 이천 물류창고의 화재사건과 택배기사의 과로사와 같은 산재 사망자수는 2020년 상반기에 벌써 470명에 이르고 노동현장의 재난과 해고의 고통 속에서 연간 560여 명의 노동자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작가 김훈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가?”로 장탄식을 했을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사회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남녀임금 격차 1위, 노동시간 3위, 출산율 0.97로 세계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수치들은 누군가의 삶을 위해서 다른 이들의 희생이 전제되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사회는 50년 동안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임금과 함께 안전에 덜 신경을 쓰며 자유롭게 해고하고 싶어 하는 사업자, 고임금과 함께 안전하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 양 세력 간의 사생결단식 승패게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온갖 낡은 이념들이 동원되고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배타적 인식구조 하에서 어느 파당이 승리했다고 한들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을까? 이제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우리 역량을 총동원하여 함께 살 수 있는 ‘사회 방충망’을 찾아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는 수많은 전태일이 이 땅에 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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