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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그림자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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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버스에 흑인 여성이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그 뒷자리에는 백인 남성이 앉아 반대편을 본다. 미국에 흑백 통합 탑승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된 1956년 12월 21일의 모습인데, 흑인 민권운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다. 사진 속 여성은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자 파크스다. 그는 1955년 12월 1일 버스를 탔다가 운전기사로부터 자리 이동 요구를 받았다. 당시는 백인 좌석과 유색인 좌석이 분리돼 있었는데, 그는 유색인 좌석에 앉았지만 백인 좌석이 다 차면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파크스는 거부했고, 경찰은 그를 ‘분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이로 인해 집단적 시민권 운동의 효시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운동’이 벌어졌다. 11개월 후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흑백 분리 탑승은 사라지게 됐다.

그로부터 8년여 뒤인 1964년, 화가 노먼 록웰은 잡지 ‘룩’의 표지에 흑인 여자 어린이의 삽화를 그렸다. 주인공은 당시 6세인 루비 브리지스로, 백인만 다니던 초등학교에 등교한 첫 흑인 학생이었다. 삽화는 브리지스가 백인들의 테러에 대비해 경호원들이 사방에서 호위하는 가운데 학교로 가는 장면이다. 록웰은 이 작품에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제목을 붙였다. ‘브리지스의 등교’ 그림은 ‘파크스의 통합 탑승 버스’ 사진과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상징하는 전설로 남았다.

이 그림은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콤비의 승리와 더불어 거듭났다.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리아 괼러가 미국의 첫 흑인·여성 부통령이 될 해리스의 사진을 브리지스의 삽화와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 것이다. 작품에서 검은 정장 차림의 해리스는 하얀 벽에 그림자로 표현된 브리지스와 나란히 걷고 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의 말처럼 “과거(브리지스)와 현재(해리스)의 대화” 속에 새로 쓰는 역사를 보는 듯하다. 파크스와 브리지스가 없었다면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해리스 또한 다수 백인 사회의 소수로 머물렀을 터이다.

바이든과 해리스는 당선 연설에서 ‘가능성’을 강조했다. “더 자유롭고 더 공정한 미국, 존엄과 존경이 함께하는 미국을 향한” 가능성이라고 했다. 그 가능성은 인종, 당파, 가치관, 성 정체성 등 모든 차이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광범위한 연대”라고 했다. 그 가능성은 ‘그림자 소녀’와 같다.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보다 참신하게 재해석되어야 하는 과거, 곧 역사 말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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