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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암흑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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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많이 피우는 시절’.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 종족인 수우족은 겨울을 이렇게 부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마이클 블레이크의 소설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에 나오는 표현이다. 수우족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춥고 눈 내리는 서너 달은 들소 사냥을 할 수 없어 천막에서 담배만 피워야 했기에 이렇게 불렀다.

수우족을 닮지는 않더라도 4계절 만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시·공간적 ‘좌표’를 점검할 수 있어 꽤 훌륭한 제어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겨울은 ‘나무를 만나는 시절’이다. 크든 작든 나무만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산골서 자란 까닭인가 싶은데, 여름에는 잎과 꽃에 가려서 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배롱나무만 해도 그렇다. 한여름에는 백일홍 꽃만 보인다. 겨울에야 비로소 그 굴곡지고 단단한 날것 그대로의 배롱나무와 만난다. 초록이 지쳐 들었다는 단풍마저 스러진 11월 중순, 이맘때면 경남 밀양의 금시당으로 달려간다. 460년 묵었다는 금시당의 저 우뚝한 은행나무 아래 황금빛 융단에 서서 겨울을 맞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흐르는 강물에 기꺼이 잎들을 던져주고 줄기와 가지를 드러낸 은행나무는 언제나처럼 생명의 봄을 준비하며 바람을 벗 삼아 한겨울 인고의 시간을 견뎌낼 준비를 마쳤다.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한 잎들이 준비해 준 에너지를 뿌리 깊숙이부터 가지 끝까지 꼭 끌어안은 채.

올 겨울 지구촌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특별한’ 시절을 보낼 것이다. 이른바 ‘암흑의 겨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 표현을 써서 널리 알려졌다. 이날은 전세계 코로나19 감염자가 5000만 명, 미국 내 감염자도 1000만 명을 넘긴 날이기도 해 바이든의 연설이 더 무겁게 와 닿았다.

하지만 영원한 암흑기는 없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14세기, 그 암흑기의 끝에서 르네상스와 근대정신이 싹 텄다.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 선생의 책 ‘다시, 나무를 보다’에 인상 깊은 부분이 나온다. 1645년~1715년 유럽 혹한기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무들도 살아남기 힘겨웠지만, 스트라디바리는 더욱 촘촘한 나이테를 쌓으며 살아남은 나무들로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엊그제 들려온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3상 90% 성공 뉴스가 따뜻한 봄 소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성찰 없이 성장할 수 없듯이, 겨울의 인내 없이 봄의 새싹을 틔울 수는 없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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