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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삶을 지켜주는 의식들에 관하여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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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10 19:57:4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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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생활을 돌아볼 때면, 내가 가진 하나하나의 습관들이 어느덧 나를 지켜주는 의식들이 되었다고 느끼곤 한다.

불면에 고생하던 나는 잠을 잘 때마다 안대를 쓰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안대를 쓰면 어느덧 잠을 잘 들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고, 실제로 꽤나 불안하거나 걱정되는 상황 속에서도 곧잘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안대로 부족하면 유튜브로 빗소리를 틀고, 그래도 잠이 잘오지 않을 때는 그 위에 귀마개를 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이제 나는 잠을 잘 들 수 있다’는 의식이나 최면 같은 것이 되어주고, 그 덕분에 불면의 습관이 많이 고쳐지기도 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약간의 집중력을 얻거나 더 깨어 있게 되고,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작용하는 때도 있다. 실제로 커피의 생물학적인 각성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커피 한 잔이 주는 정신적 각성 혹은 믿음이 존재한다. 때로는 마음이 답답할 때, 마음가는 대로 글 한편을 쓰고 나면, 정신이 더 맑아지리라는 은연 중의 믿음 같은 것도 있다. 그런 나만의 믿음과 의식, 습관들이 하루하루를 채워주는 것이다. 특히, 이번 가을에는 에센셜 오일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다. 매일 맡는 향기가 나의 몸과 마음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내게 위로를 준다.

삶에는 그런 의식들이 채워져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위해 마시는 매일의 홍삼차 한잔이나 히비스커스 차 한 잔도 좋다. 매일 한 구절 읽는 책이 있거나, 매일 기도하는 시간이 있어도 좋다. 매일 산책하는 시간이나 정기적으로 음악을 듣는 시간이 있어도 좋다. 그런 일상에서의 의식적인 행위들이 실제로 삶을 채우고 어떤 의미 있는 형식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삶에는 반드시 형식이 필요한데, 아무런 형식도 없이 매일 되는 대로 살다보면, 삶이 무너지는 때가 온다. 되는 대로 살지 말고, 형식을 갖추어 살아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다. 형식이 삶의 내용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의식은 매일 밤 아내의 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주는 일이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 없어도 하루에 일이십분쯤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우리의 관계라는 것을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랑 다툰 날이나 무척 피곤한 날에도 그런 의식 만큼은 지켰던 터였다. 아내가 홀로 서울에 살 적에는 매일 전화를 했다. 아이를 재워두고, 혹은 점심 무렵에 아내랑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교환일기라든지, 한 달에 편지 한 편 쓰기라든지, 그런 형식이 정성이 되고 의미가 되고 삶이 될 거라 생각한다. 삶에서 만들어야 하는 규칙이 있다. 어떤 규칙을 만들어두느냐가 나의 삶과 관계와 미래를 만든다. 결코 어기지 않는 규칙이 있다는 건 삶의 기둥 같은 것이 된다.

삶이란 그냥 두면 손에 잡히는 실체 같은 것이 없어서 흘러가는 강물이 된다. 그러나 의식과 규칙이 있으면 말뚝을 박듯이 삶의 준거점 같은 것들이 되어준다. 그런 것들은 삶에서 다른 나쁜 일들, 걱정들, 불안들이 들끓어 넘칠 때도 삶에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준다. 그 어떤 낯선 곳에서도 안대 하나만 들고가면 잠들 수 있다. 그 어떤 낯선 곳에서도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글을 쓰며 고향처럼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매일 듣는 음악 한 곡이 있으면 내가 속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그런 자기만의 규칙과 의식, 삶의 리듬이 모두에게 중요한 한 해였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외부적인 격동이 무척 극심했기에, 그럴수록 나의 삶을 지켜내는 나만의 습관들과 형식들이 절실했던 해였다.

삶의 많은 것들이 무너지거나 다시 만들어지고, 휩쓸려가거나 역경에 휘말리더라도, 나의 삶을 위한 몇 가지 의식들은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어떤 어려움도 삶에서는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무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결국 내가 오랫동안 지켜온 의식들만이 말뚝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사랑이든, 우정이든, 몸과 건강이든, 꿈이나 마음이든 말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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