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진핑 중국은 21세기 판 종주국으로서 자처하는 것 같다. 중국몽을 꿈꾸는 것 같다. 금세기는 말 그대로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고도의 교류와 다양한 협력을 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살고 있는 세기이다. 이러한 세기일수록 서로 주권과 독립을 존중해야 교류와 협력이 진행될 것이다. 불행히도 코로나 바이로스 대유행으로 인해 교류와 협력이 잠시 위축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불행한 가운데 또 다른 불행한 사건이 한·중 사이에서 일어났다. 최근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가 주관한 벤플리트상을 수상한 BTS소년단이 “6·25전쟁 때 한국과 미국이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기억할 것이다. 70년 후에 우리의 세계는 과거보다 더 긴밀해 질 것이고, 우리의 경계와 기타 국면이 이전보다 약해질 것이다. 글로벌 공동체의 일원인 우리는 함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더 깊은 이해와 결속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매우 인도주의적 말을 했다. 한국 전쟁사의 한 단면을 의미 있는, 균형 잡힌 표현에 대해 중국 네티즌은 맹공격했다. 그들은 BTS의 수상 소감이 “중국의 존엄을 무시했다”고 한다. BTS소년단의 수상 표현은 중국의 존엄과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 그 외에도 환구시보는 그들의 격한 감정을 전하면서 애국주의를 넘는 국수주의(chauvinism)를 불러 일으켰다. 이와 함께 BTS에 의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휠라 등의 인터넷 선전물을 우리 스스로 철회케 한 소동도 벌였다. 참으로 괴이한 현상이다.
과연 국수주의적 행동(chauvinistic acts)이 오늘의 중국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우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계속 이어 갈 수 있을까. 그러한 행동은 단연코 부정적 영향만 미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보이자 며칠 안돼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몇 가지 표현을 본다면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 또는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적 지뢰’ 등 비난이 나왔다. 이러한 비난이 나오자 슬그머니 중국의 국수주의적 작태가 사라졌다.
이 같은 중국의 국수주의적 작태에 직면한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필자는 여러 곳에서 정부의 성명서 또는 기자 회견문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표현을 보았다. 즉, “중국의 자부심이나 역사적 상처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한 국회의원의 문구를 발견했을 뿐이다. 정부, 특히 외교부는 이러한 작태를 비난하는, 또는 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즉각 발표해야 했다.
과거 조선조가 중국에 사대(事大)의 예(禮)를 표했던 것을 사대주의(事大主義)로 쉽게 표현하지만 진정한 사대주의 예가 아니었다는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 지리적 숙명에 처해 있었던 조선조였지만 사대주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漢) 민족뿐 아니라 북방민족의 지속적인 압박과 침입에 줄기차게 저항했다. 우리의 민족의식은 그래서 저항적 민족주의 이념이 강하다. 오늘날 자칫하면 문재인 정부가 우리의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을 잘못 이해해, 한중 관계를 건전하지 못한 현대판 사대주의에로 인식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지리적 숙명론에도 중국의 오만성과 일방성을 시정하기 위해 그때그때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만일 문 정부가 침묵 또는 저자세로 일관한다면 앞으로도 스스로 사대의 예를 갖춰야 하고, 그로 인해 양국 관계는 불평등한 관계로 흐를 것이다.
우리의 외교부는 왜곡돼 가는 양국 관계에서 균형을 잡아 상호 발전하는 외교 활동을 전개할 일차적 책임이 있다. 이 같은 적극적 외교를 했더라면 오늘날 ‘BTS 사건’ 같은 굴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면 끝내 그것이 중국을 종주국으로 키워 줄 것이다. 그 때는 우리에게 사대의 예를 갖출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이제라도 할 말을 해야 한다. 중국몽을 키워 미국적 세계 질서(Pax-Americana)에 도전하는 시진핑 중국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주권·독립국의 모습니다. 여기에서 올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라.
부산대 명예교수, 한·유럽연합포럼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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