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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웃지 않는 사람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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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05 19:35:1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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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다. 달력의 큰 숫자 11은 앙상한 나무 같다. 이맘때 나는 막 지펴질 땔나무처럼 건조해진다. 마음은 벌써 불안과 체념이 교차하는 연말이다. 임박한 책방 이전일을 앞두고 낭독회를 열었다. ‘우리들의 낭독회’라는 제목으로 스무 명의 참가자들이 자작시나 애송시를 읽었다.

그날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더불어 살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이들이 호숫가 작은 책방에 모였다. 모처럼 모여 화기애애하게 어울렸다.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표정을 다 숨길 수 없었다. 즐겁고 행복해서 웃는 이가 있었고, 어색해서 웃는 이도 있었고, 웃어야 하기에 웃는 이도 있었다. 요즘 세상에도 시를 쓰고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흔한 말로 나는 오프닝 멘트를 했다.

예닐곱 분의 낭독이 이어진 후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자기가 먼저 시 한 편 낭독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곧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예 나갈 채비를 하고 문 앞에 서서 시집을 펼쳤다, 웃음기 싹 가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근 중고물품 거래 플랫폼에 ‘아기를 팔겠다’고 내놓은 사람이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병원비만 내 주세요 인터넷 거래는 쉬웠다 최소한의 지문도 찍지 않은 몸 핏기 없는 달덩이 싸매고 사라지는 젊은 부부 중요한 건 여담 아기바구니까지 차비 들 일 없다

마을의 모든 소가 구덩이를 향해 가고 구름을 보기 전에 폭우가 내리던 날 오오 보드라운 머릿결은 허벅지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가 다시

목숨을 걸 만큼 재밌는 게 없을까 저건 뭘까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강 너머 흰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둥그런 거”

그가 낭독한 내 시의 일부만 여기 옮긴다. 작품 제목은 ‘표류하는 흑발’이다. 흑발의 여고생은 미혼모가 되었다. 원치 않는 아기였다.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기 살 사람을 물색했다. 불임을 고민하던 젊은 부부가 미혼모에게 와서 출산 병원비를 지불하고 아기를 데려가는 이야기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던 미혼모는 폭우가 퍼붓는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홀연히 사라진다. 시도 때도 없이 헛것을 보았거나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고 슬펐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자살하는 이가 있다.

시쳇말로 ‘갑분싸’였다. 갑자기 낭독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표류하는 흑발’을 읽자마자 그는 문을 밀고 떠났지만, 남겨진 우리들은 당황스러웠다. 만추의 석양빛이 스며드는 책방에서 우리는 눈이 부신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 나날들과 꾹 참아왔던 꺼림칙한 감정이 노출되는 기분이었다.

웃을 일 드문 시절이다. 타인을 조롱하거나 야유하려고 웃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흔치 않은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내가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면 “분위기 좋은데, 판 깨지 마라.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는 이가 있다. 울적하고 우울한 기분은 확산 전염된다고 하면서 내 입을 틀어막는다.

사랑받는 사람은 환하다. 인상 좋은 사람들은 주로 웃는 상이다. 그들 주위로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은 자신을 웃게 만드는 이를 필요로 한다.

문학판만 해도 수상식장은 잔치 분위기다. 뉴스를 보면 동인문학상이나 목월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상금이 클수록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 같다. 수상자들이 싱글벙글하지만, 정작 그 내면은 행복하기보다 복잡할 것이다.

올해는 재앙의 한해였을까? 근 10개월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무기력해진다. 매일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우울감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거울 보며 억지로 웃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미친 사람 같다. 모두 웃을 때 웃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사회에서 조금 미쳐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극심한 고통이나 절망감, 결별의 슬픔이 있어도 담담하게 털어놓을 데가 없다.

“너 왜 그래? 큰 상도 받았다면서. 상금이 없어서 그러냐?” 어제도 이런 말을 들었다. 상금 때문에 시 쓰는 사람은 없다. 내가 시무룩해도 그러려니 하면 좋겠다. 나의 자연스러운 표정은 무표정에 가깝고 입꼬리가 좀 처진 거다. 그만해라, 상을 받았으니 기뻐야 한다, 책방도 장사니까 웃어야 손님도 오고 복도 온다, 시인이니까 품위를 지켜야 한다, 여자니까 싸워봤자 손해니까 참아야 한다는 등의 조언은 잘못 틀어놓은 라디오 같다.

그리하여 나는 거절한다. 계속 하라는 말도, 접으라는 조언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누구의 삶이나 죽음에 관해서도 낄낄거리며 지껄이면 안 된다.

시인·책방이듬 대표·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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