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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시작은 스티커 /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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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1-01 19:14:1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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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자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일이 늘어났다. 회의와 수업은 ‘줌 화상회의’로 진행하고, 코로나 관련 상황 변화가 있을 때마다 ‘단톡’으로 일의 세부사항을 조율한다. 어쩌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할라치면 온라인 첨삭 강의, 줌 화상회의 등이 자주 거론된다. 나는 이 상황이 그리 반갑지 않다.

집에서 강의를 진행할 때마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린다. 수업준비를 하고 옷을 갖춰 입고 강의 장소로 이동하는 일이 내겐 수업 전의 ‘의식’ 같은 건데 그런 것 없이 책상 앞 컴퓨터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는 게 적응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리고… 외롭다. 분명 화면 너머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외로워진다. 그들의 정확한 표정을 알 수 없으니 외롭고 딴짓하는 것이 잘 보여서 외롭다. 각자의 공간이 모두 다른 모습이고 서로가 지닌 소음이 한꺼번에 들려올 때면 나와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집중 못 하고 멀어진다.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수강생이 키우는 개는 맹렬히 짖어대고, 단물이 뚝뚝 흐르는 밀감을 사라며 길가의 트럭은 소리치고, 수강생 한 명이 이십 분 전부터 책상 아래 고개를 숙이고 몰래 통화하는 모습이 내겐 너무 잘 보이는데, 이 와중에 왜 문을 닫아놨느냐고 문을 긁으며 시위하는 내 고양이들이 있다.) 집에서 쉬는 날에도 업무와 관련한 문자와 ‘카톡’이 쉴 새 없이 폰에 찍힌다. ‘온라인 대면 진짜 후지다, 정말 후져!’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고양이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고 있었고 곰용 씨는 운동을 갔다. 모처럼 일없는 날이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책상 앞 잡동사니를 넣어둔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온갖 물건이 있었다. 신생아를 살린다는 모자 뜨기 키트와 먼지 제거용 테이프, 볼펜 몇 자루와 지우개, 동전 이백칠십 원과 단추 서너 개가 보였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내 생애 처음 써 본 스마트폰. 2010년대 초반에 사서 쓰던 기억이 생생했다. 휴대폰을 뒤집어보니 생뚱맞게 새끼손톱만 한 스티커 하나가 붙어있었다. 토끼 그림 아래 ‘데이트’라고 적힌 스티커는 삐뚤게 붙었다. 아!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였을 때가 떠올랐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일곱 명이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의 한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잠도 자지 않고 술 마시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떨 만큼 체력이 좋던 삼십 대 초반이었다. 스티커는 친구의 딸, 별이가 그날 붙여준 것이다.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 싶어져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스티커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우리의 단톡방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추억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억이 담긴 물건은 버리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왔고 고등학교 시절 함께 만든 우정의 이름표 사진이 떴다. 순간, 우리는 환호했고 여고생 모드로 떠들기 시작했다.

마흔이 된 우리는 일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주야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지만 애까지 보는 워킹맘, 친지도 없는 타지에서 코로나를 피해 집에 갇혀 아이 셋을 독박 육아하는 친구, 늦게 편입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아이 돌보는 친구,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코로나에 대비하느라 정신없는 친구까지 우리 모두 지쳐 있었다. 우리는 곗돈을 모아 가까운 해외여행으로 지친 일상을 털어내곤 했다. 올해는 코로나로 그마저 불가능했다.

시무룩한 우리를 위해 나는 모교를 코스로 넣은 부산 투어를 제안했다. ‘101가지 부산을 사랑하는 법’ 책 집필에 참여하면서 내가 경험한 부산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모교 뒤편으로 펼쳐지는 산복도로와 원도심. 추억 이야기로 신난 친구들은 모교 방문, 깃발 제작, 미니 확성기와 렌터카 준비, 호텔 스위트룸 예약까지 들먹였다. 다시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의 여행 계획은 급기야 ‘딸과 함께(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에게 딸이 있다)하는 엄마 투어’로 확장됐다.

세상에, 별(딸)이 스티커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이렇게 크다니. “온라인 대면 멋지다, 진짜 멋지다.” 나는 소리 질렀다. 조만간 각자 맥주 한 캔씩 들고 온라인 대면 모임을 하는 ‘랜선 수다회’를 조직해야겠다. 겨울에 할 부산 여행을 위해 수다 떨 사안이 많으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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