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영어표현이 있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코끼리가 있는 것을 모를 수가 없는데도 코끼리가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안인데 워낙 예민한 문제라 누구도 거론하기를 피하는 사안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미국 법정·정치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실생활에서는 좀 더 비꼬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코끼리가 된다. 미국에는 인종차별을 방지하는 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은 빈번하고 다양하다. 필자가 유학했던 대학의 박사과정에는 흑인 학생은 없었다. 백인과 동양인 학생만 있었다. 수업시간에 인종차별에 관한 토론을 할 때는 인종차별은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던 백인 학생들이 식사자리나 술자리에서 흑인들을 비하하는 농담을 해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겉으로는 인종차별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인 듯하면서 삶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인종차별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인종차별이 없는 듯 행동하였다.

필자는 유학시절 강의조교(teaching assistant) 교육을 받을 때도 방 안의 코끼리 상황을 겪었다. 동성애자 차별이 될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을 받을 때였다. 교육담당자가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동성애에 대한 불편함이 있으면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교육시간에 털어놓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필자는 진심으로 고민해 보았다. 내 주위의 사람들, 설령 내 형제자매가 동성애자라 할지라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자녀가 동성애자라고 밝힌다면 초반에 조금은 불편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의 불편함은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교육담당자에게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그 교육담당자가 필자를 동성애 혐오자로 낙인찍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필자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교육을 같이 받고 있던 필자와 친분이 있던 조교들이었다. ‘너 그런 인간이었어?’ 하는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교육을 받기 전날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농담을 즐기던 조교들이었다. 결국, 필자만 3일간의 특별 교육을 받았다. 서약서까지 썼다. 한참 지난 뒤에 그때 조교들의 표정이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교육담당자가 솔직히 말하라고 진짜로 말하다니, 너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이었어?’

요즘 한국 정치에서 방 안의 코끼리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 그 표현의 본래 의미와는 다르지만, 자꾸 방 안의 코끼리를 연상시킨다. 그 코끼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윤석열 검사는 한국 검찰 조직에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 전담 요원이었다. 그래서 필자의 주위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임명에 우려를 표현하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상당수 있었다. 검찰총장은 정무감각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들 했다. 윤석열 검사의 역할은 적폐 수사를 마무리 짓는 중앙지검장까지가 적절하다고 했다. 윤석열 검사는 어떤 정권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기에는 버거운 검사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윤석열 검사를 신성한 코끼리로 떠받들면서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코끼리를 방 안에 밀어 넣으면 반려견으로 변할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이제 방 안의 코끼리 때문에 방 안의 사람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잘못하면 깔려 죽게 생겼다. 방 안의 코끼리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신성한 코끼리가 갑자기 사악한 코끼리가 되었다. 코끼리를 다시 방 밖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코끼리가 꿈쩍도 안 하니 채찍질을 해댄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수없이 만들어져 온 우스갯소리들이 생각난다. 교수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도 있었다. 교수인 필자가 스스로 말하기는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답은 조교를 시킨다였다. 지금 집권 여당에는 훌륭한 조교가 필요할 것이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차동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