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에 와서 신기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있다고 한다. 카페 등 공개된 장소의 탁자에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두고 소유자가 자리를 비워도 아무 일이 없더라는 것이다. 자국에서라면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을 게 분명하다며 감탄을 한다고 한다.

이들이 놀라는 것은 또 있다. 아파트나 원룸 입구에 버젓이 놓여있는 택배 상품의 ‘안전성’이다. 며칠 간 주인이 들어오지 않아도 물건이 없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를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국룰’(국가적 룰)이라 일컫는다.

국민 대다수는 우리 사회의 택배문화를 아주 유용하다고 느낄 터다. 주문만 하면 짧은 시간 내 어김없이 집 앞에 놓인다. ‘총알배송’이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요즘에는 상품 종류에 따라 새벽 시간에도 이게 가능해졌다.

근데 편리함에 취하다 보면 잊고 사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총알 배송’과 ‘새벽 배송’의 이면에 깔린 택배 노동자들의 눈물을 솔직히 우리 사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니면 ‘내 돈 내고 물건 사면서 받는 당연한 서비스’인데 뭐가 문제겠느냐며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다.

최근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과도한 업무 시간과 막대한 처리 물량, 사업주의 ‘갑질’ 등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다. 올해에만 과로사·자살 등으로 종사자 10여 명이 숨졌다. 한 고인의 유서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많지 않은 임금 탓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안타까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른 고인은 대부분의 사람이 잠들었을 새벽 4시께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휴대전화 문자를 남겼다. 노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택배 노동자의 근무시간은 한 주에 71시간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처한 상항이 더는 외면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음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를 계기로 택배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이런 비극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이 사안을 거론했다. 지난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는 특별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단적인 사례”라 지적했다. 이어 주무 부서에 “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별히 대책을 서둘러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시민단체와 노동계도 개선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얼마 전 개최한 집회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며 이런 체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스스로가 각성하자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택배 이용을 자제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적지 않게 올라 온다. 이번 기회에 ‘새벽 배송’을 없애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한편에서는 택배 노동자 관련 사안은 소비자의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배송 체계를 도입한 기업과 이를 용인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더 나가서는 경제적 이유로 개인이 어쩔 수 없이 택배업무를 선택했더라도 노동자 삶의 황폐화를 막는 것은 사회 전체의 임무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다.

여론에 밀린 감은 있으나 택배 회사가 택배 노동자의 업무 경감을 약속한 것은 일단 고무적인 일이다. 여러 명의 자사 노동자가 숨진 CJ대한통운은 지난 22일 회사 대표의 사과와 함께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업무 부하가 많은 작업에 지원 인력 4000명 순차적 투입, 내년 상반기 중 모든 택배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 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 다른 물류회사들도 방지책 수립을 공언했다.

그러나 걱정되는 바는 이전의 많은 사례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같은 다짐이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일련의 대책이 확실히 만들어져야 하며 사회의 지속적인 감시망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먼저 기업은 택배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또 정부와 정치권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해소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택배 노동자의 고충을 한 번쯤은 헤아려 볼 필요가 있겠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 문턱에 이른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일에 지쳐 쓰려져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잇따라 나온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비극은 지금 이 순간부터 끝나야 한다.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