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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친구 집 다녀오는 길 /양민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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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0-15 19:17:5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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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세상 풍파에 갈피를 못 잡아 울적한 심정이다. 마음 달래는 데는 걷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녁을 먹고 친구 집으로 향한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 준다면 기분이 한층 나아지리라.

김수로왕릉 뒤쪽에 있는 친구 범지의 집은 서예 서실을 겸하고 있다. 걸어가면 반 시간 남짓 걸린다. 거북공원 가로등 불빛 은은한 시내를 벗어나 호젓한 우리 동네 숲길을 지나면 봉황교가 나온다. 다리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해반천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가장자리에는 갈대와 마름과 어리연꽃 등 수초가 물속에 뿌리를 내려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런 군락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아 좋다.

다리 위에서 물속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팔뚝보다 큰 잉어 몇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며 유유히 헤엄친다. 보기 드문 한가로운 풍경이 울적함을 적잖이 달래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해반천을 따라 달리는 경전철 안에는 승객 몇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고단한 몸으로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가던 발길을 이어 다리를 건너면 김해도서관이 나온다. 도서관을 지나 샛길로 접어들면 수릉원이다. 공원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있다. 가장자리 벤치 곳곳에 쓸쓸하게 홀로 앉아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두고 온 고향과 가족들이 그리운 것일까? 삶이 힘든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그만 내려놓는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수릉원을 가로질러 조금 더 가면 친구 집이 보인다. 집에 들어서면 정원의 오죽과 공작단풍나무가 고개를 숙여 나를 반긴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친구는 그냥 부처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서실 의자에 앉으니 친구가 녹차를 내어 온다. 하동에 있는 지인이 보내온 우전차를 개봉했다며 서실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잔씩 두루 따라 건넨다. 차의 맑은 향기가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서실에는 친구에게 서예를 배우는 몇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 그중에 친구 같은 후배 도연 선생도 보인다. 셋은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뜻이 맞아 소주 한잔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수로왕릉 돌담길을 따라 오일장이 서는 시장을 지나 상가 안의 횟집으로 간다. 소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주로 옛날 서화가의 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담소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취기가 오른 불콰한 얼굴로 횟집을 나오면 중천에는 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다. 우리는 달빛 아래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에둘러 대성동 고분군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간다. 고분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는 커다란 포구나무 고목 두 그루가 묵묵히 서 있다. 고목 아래에 서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러러보다가 팔을 벌려 쓱 한번 안아보고 다시 고분군을 오른다. 어릴 적 뛰어놀던 뒷동산 같은 고분군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끔 고분군 위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릴 적 추억이 그리워 아이들처럼 연을 날려본 적이 있다.

고분군 정상에 있는 널따란 바위에 걸터 앉아본다. 목서 꽃향기를 실은 향긋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에는 밝은 달빛 때문인지 드문드문 숨어서 반짝이는 별이 운치를 더한다. 잠시 앉아 있다가 고분군을 내려와 고분박물관 앞을 지나 해반천으로 간다. 이번엔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다보니 수북한 수초 사이로 왜가리 한 마리가 외로이 먹이를 찾고 있다. 고고한 자태가 고와 휴대폰을 꺼내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날아가질 않는다. 잔잔히 흐르는 물에 물고기가 달아날까 봐 한 발 한 발 걷는 모습이 가만하다.

해반천을 건너 다시 우리 동네 숲길로 들어서면 갈 때와는 달리 호젓함을 넘어 적막하다. 하지만 조금 어둑한 숲길은 나에게 쾌적함을 준다. 가슴을 펴 심호흡을 해본다. 몇 번의 심호흡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숲길을 나와 거북공원 가로등 불빛에 화려한 은행나무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나를 반긴다.

지난여름은 코로나19와 기상이변 등 세상 풍파에 유난히 울적했다. 울적한 만큼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다. 울적한 마음을 친구를 만나 풀어본 하루다.

논어(論語) 첫 장에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라 했다. 이 가을에 한 번쯤 누군가의 유붕(有朋)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시인·인제대학교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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