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가 누드 사진집을 내려다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사전 공개된 일부 컷에 한복 입은 여인이 일본 욱일기를 배경으로 군인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누가 봐도 일본군 위안부가 소재였다. 전국민이 공분에 휩싸였다. 기획사 측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시사회를 열어 공개적으로 평가받겠다고 하는 바람에 분노는 더 타올랐다. 결국 이 사건으로 해당 기획사는 물론 모회사까지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고 문제 연예인도 오랫동안 일을 멈춰야 했다. 위안부 누드 사진 파문은 위기 관리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미국 커뮤니케이션 교재에도 실렸다.

YB화법은 “네 말이 맞아(Yes), 하지만(But)”으로 이어지는 화법을 뜻한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먼저이기 때문에 상사와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에게 자주 권유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화법이 결과적으로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불과해서 옳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선후가 바뀌었어도 결국은 “당신이 틀렸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YB화법은 이혼 부부의 대화법이라거나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는 대화법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소통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최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 화제다. 아들의 군대 휴가 특혜 의혹과 관련 야당 의원의 추궁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요지는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전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다”였다. 검찰이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밝혀낸 추 장관과 보좌관의 SNS 문자 내용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아들의 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청탁을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드러난 증거만 수긍하는 부정적 측면의 YB화법 사례다.

조직이나 개인에게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문제가 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반대로 철저하게 부인하거나이다. 인정할지 부인할지는 조직이나 개인이 처한 내외부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러나 선택한 대응법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마지막엔 드러나게 돼 있다. 그걸 지켜보는 대중은 사과가 진심인지, 정말 억울한건지 이미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학자 윌리엄 베노이트의 말을 빌리면 위기 관리 성패의 핵심은 “결국 대중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