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4년부터 정신장애인이다. 장애 판정을 받기 전에는 4년 간 신발회사에서 물류업무를 했다. 상사는 늘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을 원했고 심리적 압박이 와도 말을 못 하고 끙끙 앓았다. 그러다 점점 불안·초조해지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누가 찾아올까 두려워졌다. 급기야 현관을 잠그고 남몰래 창문으로 숨어다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술로 하루를 채우던 시절이었다.

행방을 찾던 큰형이 실종신고를 하려다 집에 숨어 살던 나를 발견했다. 형의 끈질긴 설득으로 함께 정신병원에 가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내가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아예 믿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약을 먹으며 정신재활 이용시설에 다녀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장애인도 아니고 재활이 필요없다 생각했지만, 형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해운대 송국클럽하우스에 등록했다. 여덟 살이나 많은, 아버지 같은 맏이 형님의 말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출근했다. 할 수 있는 한 온몸으로 시설의 규칙을 거부했다. 배정받은 업무를 거부하고 빈둥거리거나 게임을 했다. 회원들과 사회복지사들은 그런 나를 비난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라며 위로해줬다.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워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때 기억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는지 모른다. 시설에 나오지 말라는 이용정지를 당했으면 어쩔 뻔했는지 지금에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2012년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원동기 면허증을 땄다. 이 면허증으로 내가 매일같이 출근하는 곳에 기여할 일이 뭘까 고민했다. 시설 근처 가게들에 설치한 후원모금함을 챙기는 일부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모금함에 돈이 모이면 후원계좌로 입금한다. 장애인이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취업 지원을 받기에는 정부 보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해운대 빽다방에 모금함을 설치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9년 회원 한 분과 퇴근길에 빽다방에서 차를 마셨다. 나올 때 모금함을 설치하면 어떨지 사장님에게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다음에 가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정신장애인을 위해 모금함을 설치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이후 꾸준히 드나들며 내가 가진 질병이 어떤 것인지, 클럽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소개해 모금함을 설치하게 됐다.

클럽하우스는 현재 40개 정도 모금함을 관리하며 그 중심에 내가 있다. 초기에는 모금함 설치를 거절당하면 의기소침하고 우울해졌는데, 서로 사정이 이해되니 점차 나아졌다. 예전에 형님과 해운대구 음식물쓰레기 수거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가게 사장님들이 인연을 이어주고 도움도 준다. 그때 나를 부른 ‘허 사장’은 여전히 애칭이다. ‘허 사장, 어서 와’하며 반겨준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클럽하우스 멤버로서 기여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 힘들었던 시절 따뜻한 차 한 잔,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나눴던 사람들을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보답하는 것이 좋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해소를 위해 모금함 개발을 시작하게 된 점도 있다. 장애가 있어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애는 부분이지 한 사람의 전체를 장애로 보지 않았으면 해서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 정신장애인 자조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소소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싶어 동료상담가 교육도 받았다. 우리가 함께 걷는 길이 더 많이 생기기 바란다.

송국클럽하우스 이용 회원

*이 글은 옥진 청출어서원 원장의 도움으로 완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