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쯤이었다. 부산에 자꾸 책방이 생겼다. 내게 이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1990년대 말 대형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함께 2000년대 이후 수많은 동네서점이 하릴없이 망해 사라지고 대형 지역 서점 또한 무너지거나 악전고투의 늪에 빠지던 모습을 현장에서 취재한 기억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생긴 동네책방들은 인문·문화에 관한 소식과 메시지를 자꾸 발신해왔다.

이 현상을 담아 보기 위해 국제신문 문화부는 ‘동네책방 통신’을 기획해 2019년 1월부터 1년 동안 연재했다. 그때 실무를 맡아준 문화활동가 이화숙 씨는 “제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5월 현재 부산의 동네책방은 38곳”이라고 알려왔다. 제주도의 동네책방 ‘제주풀무질’ 은종복 대표는 지난 8월 31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제주도) 바닷가에만 책방이 60개 넘게 생겼다”고 전했다. 굉장한 증가세다.

부쩍 늘어난 동네책방들은 ‘단지 책만 파는’ 서점에 머물지 않았다. 다양한 동네 문화예술 모임이 거기서 이뤄지고,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책 읽는 모임, 글 쓰는 모임, 책 쓰는 모임, 토론회, 전시, 영화 보기, 작가 초청, 마을 행사가 펼쳐졌다. 여기에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작가회의 주관)’이나 공공 도서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결합하자 작지만, 활기 있는 ‘동네 문화 사랑방’ 구실을 할 가능성이 보였다. 부산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본 자발적 문화 행보였다.

이런 변화가 ‘도서정가제’ 덕분에 가능했단 걸 뒤에 알았다. 2014년 11월 시행한 한국의 도서정가제는 사실 ‘부분 도서정가제’다. 독자가 책을 살 때, 책값의 10%까지만 할인해줄 수 있고 추가로 5%를 적립해줄 수 있는 제도다. 그전까지는 이런 제한이 없었다. 출판사는 온라인 대형 서점에 동네 서점보다 더 싼값에 책을 공급하고, 할인 폭에도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온라인 대형 서점은 큰 폭의 책값 할인을 하고, 동네 서점 등 오프라인 서점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게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할인이 많이 되는 일부 베스트셀러에 구매가 몰리면서 출판의 다양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 작은 출판사와 신인· 예비 저자는 길이 막혔다. 동네 서점은 무수히 망했다. 지역 대형 오프라인 서점에 온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메모한 뒤 주문은 대형 온라인 서점에 했다. 싸게 산 구매자는 이익을 본 것 같지만, 다양성·선순환·미래를 크게 다쳐가며 얻는 금전 이득이란 문화 영역에선 길게 보면 결국 손해다.

2014년 11월 이후 온라인 대형 서점에 매달릴 이유는 그나마 줄었고 덕분에 동네책방과 작은 출판사가 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신간이 2만 종 증가했다는 자료도 있다. 작은 출판사와 동네책방이 늘자 독립 출판, 1인 출판이 활발해졌다. 부산 연제구 동네책방 ‘카프카의 밤’에서 카프카의 ‘변신’과 부산의 신인 작가 이슬기 씨가 독립출판으로 펴낸 ‘일 인분의 삶’을 사 자취하는 대학생 조카에게 선물했다. 그 뒤 만난 조카는 “‘일 인분의 삶’을 읽고 정말 공감했다”고 했다. 그에게는 부산 신인 작가의 책이 ‘변신’보다 힘이 셌다.

‘큐레이션’도 새로운 자산이다. 부산 중구 사십계단 곁 동네책방 ‘주책공사’에 갔다. 좋은 자리에 놓은 책을 보니 주인장의 취향과 기준이 느껴졌다. 역사와 고전에 빠져 있는 나의 기호와는 조금 맞지 않았다. 어쨌든 고르다 보니 작가 김연수의 소설, 시인 허수경의 산문 그리고 그림책을 사게 됐다. 집에 와서 살펴보니, ‘득템’ 수준의 좋은 책이다. 이것이 동네책방 큐레이션이다. 동네책방은 작아서 책을 풍부히 갖추기 어렵다. 주인장이 판단해 독자와 나누고 싶은 책 중심으로 배치한다. 다시 말해, 이곳은 책으로 된 ‘갤러리’다. 내 취향에만 매달렸다면 사지 않았을 책을 동네책방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현재의 도서정가제는 일몰제 법이기에 올해 11월 만료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의 도서정가제가 효력을 상실하면, 할인이 대폭 가능한 방향으로 개정할 예정이다. 많은 작가와 출판단체 그리고 동네서점 단체가 ‘개악’이라며 이를 반대하는 운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정치와 행정은 국민과 미래를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요체다. 도서정가제가 없던 때와 있는 시절을 다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현행 도서정가제를 ‘개악’하면, 동네책방은 망한다. 다양성은 치명상을 입는다. 오래 전 인터뷰한 부산서점조합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점은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세제 혜택 등을 준 덕에 한국의 서점은 1970년대 이후 크게 흥했다”고 회고했다. 백범 김구는 ‘문화의 나라’를 염원했다. 이 정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정책 경쟁에서 정녕 지려는가.

편집국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